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노키오 극단 대표

'자식들에게는 재산을 물려 줄 수 없다! 정신 차리고 철이나 더 들어라!'
아비가 마지막 유언장에 적어둔 말이다.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폭탄을 던진 말이다. 요절복통 배꼽 떨리는 유산 쟁탈전이 벌어지는 극단 푸른가시의 연극 '아비'는 이렇게 시작된다.

 울산 예술제의 마지막 공연인 김광탁 작. 이현철 연출의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가족애의 부재를 현실감 있는 극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다. 빈 손으로 왔으니 말 그대로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집착하는 것은 여전히 물질인 것이고 보면 돈 앞에서는 결국 가족애도 상실하고 마는 모습이 비참하다.

 더구나 친족인 가족 안에서 돈으로 인한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과 분쟁이 어디 있는가? 이를 미리 깨닫고 있는 극중 아비(이현철 분)의 유언은 그래서 합당하다. 살아 생전 때도 이 유언을 미리 자식들에게 들려 줬지만 자식들은 거세게 항변한다. 이제껏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냐고 말이다.

 그러나 아비는 '정말 해 준 것이 없는가?'라고 재항변한다. 낳아주고 입혀 키워주고 대학까지 졸업 할 수 있도록 맨 손으로 시작해 고생하며 뒷바라지 해 준 노고는 모르냐며 말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알 바가 없다. 그것이 원래 자식 세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흘러간 옛 노래 가사에서도 "니가 부모되면 알 것이다"라고 노래를 불렀나보다.

 부모의 재산이 당연히 자식들에게 되물림될 것이라고 계산한 자식들은 어느날 헐벗은 소외진 곳에 재산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아비의 선언에 자신들의 계획과는 빗나간 것을 알고는 원망한다. 자식들은 어미에게 이를 항변하고 어미의 인생이 아비로 인해 그동안 비참한 삶이 아니었냐며 부추긴다. 결국 이혼까지해서 전재산 30억 원의 반절이라도 위자료로 받아 자신들에게 나눠 달라고 종용한다.

 이쯤되면 콩가루 집안인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평정하듯 세상을 떠나며 비디오 녹음으로 남긴 유언으로 남은 가족들에게 아비의 마음을 전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저 자신의 아내(하다효지 분)에 대한 그립고도 다 못해준 연민과 애정을 유언으로 남기는 장면과 대사들이 우리 관객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평생을 지지고 볶으며 무식하다고 구박을 주며 살아 왔지만 그래도 자식들보다는 아내를 더 사랑한다는 말이 관객들의 가슴 깊숙이 아프게 박혔다.

 아내 역시 비디오에 남긴 남편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며 "조금만 더 살지. 그래야 못해봤던 여행이라도 같이 다니며 맛난 것이라도 사먹을 것 아니냐"는 대사와 함께 오열하며 막이 내린다. 공감하는 50대 이후 세대의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에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 관객들을 보며 연극 공연 예술이 주는 힘과 가족 사랑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해 준 연극 아비 출연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도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이미 아들에게 물려 주지 않겠다고 유언을 했다.아버지께 물려 받은 재산없이 가난한 연극배우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터라 더욱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재산 물려주면 쉽게 얻은 재산이라 쉽게 소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회적으로도 기부 문화가 늘어 나고 있다. 공수래 공수거인 우리 삶에 죽을 땐 다 빈 손으로 떠나가기에 짧은 삶을 사는 동안 모은 재산을 필요로하는 절박한 곳에 모두 기부하고 가는 삶이 사회에게도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 것을 아는 까닭이다.

 울산 예술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빛이 난다. 더욱 다양하고 감동을 전해주는 예술제로 발전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