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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서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올해로 아홉번째를 맞은 서덕출문학상의 수상자가 결정됐습니다. 울산에서 활동 중인 김이삭 시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김이삭 시인은 서덕출 선생님이 남긴 수많은 동시처럼 어린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낸 작가입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집 <여우비 도둑비>는 순 우리말로 빚은 시와 생생한 민화가 돋보이는 동시집입니다.

 가랑비, 바람비, 장대비, 약비, 가루비, 안개비, 해비, 도둑비, 여우비, 실비, 웃비, 술비 등 비와 관련된 순 우리말을 시로 만난 좋은 기회였습니다. 김 시인은 모두 32가지 종류의 비를 32가지 상황과 32가지 마음으로 담아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드리면서 지난해 상을 받으로 다녀온 그 들뜬 기분을 적어 봅니다.
 지난해 12월 제8회 서덕출 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한밤중에 서울역에 내리니 바깥은 온통 하얀세상이었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간신히 집에 찾아갔는데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속열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경기, 충청 지방은 '눈꽃송이들이 송이송이 내려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눈꽃송이 일부) 쌓여 하얀 세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열차가 달려 경상도에 닿으니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마치 새봄인 듯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울산 중구에 있는 서덕출 공원에 오르니 영산홍이 분홍꽃, 흰꽃을 피우고 있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 여린 꽃잎이 어찌 버틸 지 걱정되었습니다.
 서덕출 시인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봄편지'라는 시로 억압받는 백성들에게 조선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오는 제비를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래했습니다.

 서덕출 선생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지만 여섯 살 되던 때 대청마루에서 베개를 가지고 놀다가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결국 척추에까지 병이 번져 등이 굽은 채 평생 불구의 몸이 되고 맙니다.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선생님은 어머니로부터 한글을 배우고 독서와 수예 등에 몰입하며 틈틈이 습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출세작인 <봄편지>는 1925년 '어린이' 4월 호에 응모해 당선된 작품입니다. 이 <봄편지>는 이듬해인 1926년 '어린이' 4월 호에 윤극영의 곡이 붙은 악보가 실리고, 1927년 10월10일에 인사동에 있는 중앙유치원에서 열린 색동회 주체의 동요회에서 김영복의 독창으로 불려지면서 온 국민의 노래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선생님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불구의 몸으로 시대 정신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선생님의 시는 작품마다 애절한 사연과 저항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1940년 2월19일 척추병의 재발로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마감하고 맙니다.

 서덕출 시인의 짧은 삶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집니다. 한참 후배인 제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저항시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살기 위해 몸을 사리는 비겁한 제 모습을 보니 부끄러워집니다.

 서덕출 시인의 동시는 리듬이 살아있어 동요로 부르기 좋습니다. 서덕출 시인의 시 정신을 이어받으라고 준 서덕출문학상에 누가 되지 않은 동시를 써야겠습니다. 서덕출 공원에서 만난 시비에 새겨진 '봄편지'란 짧은 시에는 희망을 잃은 조선백성에게 희망을 갖고 살라는 힘을 주는 동시였습니다. 서덕출 시인의 시비는 밝게 내리쬐는 초겨울 햇빛 아래서 더욱 빛났습니다.
 
 봄편지
 
 연못가에 새로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한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간 제비가 푸른편지 보고요
 조선봄이 그리워 다시찾아 옵니다
 
 겨울에 접어든 지금, 내년 봄에는 서덕출 시인의 봄편지처럼 푸른편지를 보고 조선봄이 그리워 많은 제비들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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