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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외관을 중시하는 시대라 많이 사라졌지만 한때는 담 위에 깨진 유리병이나 뾰족한 쇠꼬챙이를 박아 도둑을 막는 집이 있었다. 그런 집들은 대개 성채처럼 네모난 붉은 벽돌집에 출입구나 작은 창 말고는 별로 틈이 없어 보이고, 담은 여느 집보다 훨씬 높아 선뜻 넘기 어려워 보이는 데도, 그 담 위에 저런 조형물을 촘촘히 설치하곤 했던 것이다.

 오래돼 지붕 위에 풀이 돋아난 기와집이나, 슬레이트나 양철로 대강 마감을 한 집들이 대부분인 우리 동네에 검붉은 벽돌로 지은 소위 양옥집이 등장한 것은 내가 중학교 입학 무렵이니, 거의 사십 년 전 일이다. 당시 1,000만 원이 넘게 들여 지었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그 집은 벽돌 위에 청기와를 올리고, 손질된 향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 정원을 지닌, 담이 높은 집이었다. 보기만 해도 그 안에 누가 살까 궁금해지던 압도적으로 크고, 튼튼하고, 육중해보이던 그 집은 담 위에 뾰족한 쇠꼬챙이를 박아 더욱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역시 쇠창살로 된 대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꼬챙이가 녹 슬어 담장을 벌겋게 물들이더니 어느 샌가 슬그머니 없어졌다. 하지만 쇠꼬챙이가 준 이미지때문인지 그 집을 지날 때마다 굳게 닫힌 대문처럼 내 마음의 문도 닫게 됐다.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집을 흘겨보고는 걸음을 빨리해서 그곳을 지나치곤 했다. 거기서 나는 빈부나 계층의 벽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적개심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담장 위의 쇠꼬챙이는 담을 그냥 담이 아닌 벽으로 느끼게 하는 소도구인 셈이었다. 나는 그 집에 누가 사는지 끝내 모른 채 십여 년 뒤에 고향을 떠났다.

 벽은 건물의 둘레를 막는 수직 건조물이다. 막혀있다는 의미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나, 교류를 가로막는 불통의 의미로 비유적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막혀서 소통이나 교류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벽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넘나들 수 없도록 가로막아놓은 것을 장벽이라고 한다. 이 역시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두루 쓰이며, 장애물, 한계, 방해 요소 등을 나타낸다. 아예 앞을 가려 내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장막이라고 한다. 냉전시대엔 구소련을 철의 장막,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 했다. 이념의 장벽인 셈이다. 동서를 나누던 베를린 장벽은 1989년에 무너지게 되고 이듬 해 독일은 통일을 이룬다.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지구상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물리적 장벽은 무너졌지만 심리적인 장벽은 더 굳건해져가는 양상이다. 그리고 심리적인 장벽은 다시 물리적인 장벽을 일으켜 세우게 한다. 지구촌의 골칫거리가 된 IS 세력의 발호는 종교 간 불화가 장벽이 된 경우다. 벽은 분열의 틈새에서 생긴다. 세대 간 벽, 계층의 벽, 지역의 벽, 요즘엔 여혐·남혐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인터넷상에서 서로를 조롱하는 성별의 벽까지 등장했다.

 벽은 외부세력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벽을 지니면 오히려 불안하다. 그 안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록 밴드 핑크플로이드의 멤버 로저 워터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상화한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더 월'은, 벽이 지닌 상징성을 빼어난 영상과 음악으로 표현한 한 편의 뮤직 비디오 같은 영화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외롭게 살아가는 핑크는 틀에 박힌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나중에 록 스타로 성공하지만 세상과 벽을 쌓고 자학을 일삼으며 자신을 파괴하다가, 끝내 마음의 벽을 높게 쌓고 상상 속에서 파시스트 독재자가 돼 억눌린 감정을 대중들에게 가학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우리 삶은 절대 권력에 의해 획일화되고 벽 안의 벽돌과 같은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영화. 일그러진 표정의 남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는 가히 충격적이다. 벽이 지닌 파괴력을 생생히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부터 시위 현장에 차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시위대를 막기 위한 물리적인 저지선이라고 한다. 지난 정부에서 명박산성이라고 조롱받았던 이 차벽은 왠지 어린 시절 보았던 쇠꼬챙이가 박힌 높은 담장을 떠올리게 한다. 차벽은 정부와 국민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국민이 자기 의사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하고 주눅 들게 하는 심리적인 저지선이기도 하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예리고를 정복할 때,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사제들이 수양의 뿔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고함을 지르자 굳건한 예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노력할 때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차벽이 필요 없는 세상이 속히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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