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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선굴 암벽.


# 손자에 대한 사랑으로 쌓아올린 '오형돌탑'
금오산성의 관문을 지나면 또 다시 가파른 길로 접어든다. 군데군데 나무로 만든 계단길이 비바람에 씻겨나가 발길을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걷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10여분 정도를 다시 오르면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해 참선수도를 했던 천년고찰 약사암으로 향하는 관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철탑들이 많이 보인다.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수많은 돌탑들이 서있는 곳이 있다. 오형돌탑이 쌓여 있는 곳이다. 누가 이 높은 산 중에 이 많은 돌탑들을 쌓아 올렸을까? 몇 해 전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방영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 오형돌탑.
 금오산 오형돌탑을 만들게 된 할아버지에게는 뇌병변 장애로 태어나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손자가 한 명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런 손자를 돌봐왔는데 손자가 10살이 되던 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손자를 가슴 아파하며 아이를 위해 '오형학당'이라는 이름의 돌탑을 쌓게 됐다.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쌓은 돌탑들이 지금은 하나의 명소가 됐다. 오형돌탑은 금오산의 '오', 손자 이름의 '형' 자를 따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오형돌탑을 둘러보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금 뒤 (구)정상석이 있는 부근에 도착한다. 2014년 10월 25일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금오산 현월봉(懸月峯)에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은 곳이었다. 이전에는 1953년 한미군사 협정에 따라 정상부에 미군 통신기지가 자리 잡고 있어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돼 정상에서 10m 아래에 정상석이 있었다. 그러나 구미시가 10여년간의 미군측과 끈질긴 협상 끝에 2014년 10월 25일에 일반인에게 개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현월봉 정상은 멀리서 바라보는 경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현월봉의 모습은 높이 우뚝 솟은 봉우리로 보였으나 정상부는 비교적 평평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오산 현월봉(顯月峯)의 현(顯)은 '드러나다, 나타나다'라는 뜻으로 산꼭대기에 달이 걸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상이 개방되기 전 또 하나의 정상석을 뒤로하고 새로 정상을 향해 오른쪽으로 10여m쯤 오르면 새로운 정상석을 세워 뒷면에 개방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 약사암 범종각.
# 의상대사 창건 천년 고찰 '약사암'
정상에 서면 북동쪽으로는 금조 저수지와 구미시가 보이고 경부 고속도로와 낙동강 물줄기가구비처 흘러가는 것도 보인다. 동쪽으로는 구미공업 단지, 북서쪽으로는 효자암, 제석봉, 국사봉이, 북쪽으로는 선산읍도 보인다.
 현월봉 정상을 오른 뒤 하산하기 전, 반드시 한군데를 둘러보고 오기를 권하고 싶다. 바로 약사암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터(보봉)다.
 정상에서 우회로를 따라 내려가면, 헬기장 옆 샛길을 통해 약사암 조망터에 오를 수 있다. 돌탑이 무리를 지어 서 있는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약사암의 경관(景觀)은 정말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천혜절벽 바위아래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약사암과 요사채는 주변의 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마치 이곳이 신선이사는 선계(仙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비로움 그 자체다.


 현월봉 아래 조망터(보봉)에서 약사암의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뒤돌아 내려온다. 조금 뒤 철탑을 지나고 오형돌탑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약사암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일주문격인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을 지나 거대한 암벽 사이로 계단을 타고 내려서면 약사암에 도착한다.
 약사암은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해 참선수도를 했던 천년 고찰이다. 의상대사가 초년에 천하비경을 찾아 약사봉 바위 아래서 참선할 때 하늘의 선녀가 하루 한 개의 주먹밥을 내려줘 하루하루 요기를 했고, 약사여래가 내려와 시중을 들어줌으로써 사바번뇌를 끊고 득도해 고승이 됐다는 전설이 있는 약사봉 바위 아래가 '약사암'이다.
 약사암 약사전에는 봉안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수도산 수도암, 황악산 삼성암의 약사불과 함께 3형제 불상이라고 불리며 세 불상이 함께 방광(빛을 발함)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대한 바위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약사암과 수십길 낭떠러지 위에 그림처럼 서있는 범종각의 풍경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멋진 곳이다. 또한 약사암 아래 범종각 입구는 출입을 통제하는 팻말이 있고 철망으로 잠겨져 있다. 아래는 수십 길 낭떠러지와 위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 년에 한번 1월 1일에만 개방한다고 했다.
 약사암 범종각 다리 옆 왼쪽으로 '마애석불(보물제490호)'로 가는 길이 있다. 약사암에서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300m 정도 간다. 주 등산로에서 왼쪽(법성사로 내려가는 길)을 따르다가 왼쪽으로 희미한 갈림길로 들어서야 한다. 여기까지 제대로 된 이정표가 없다.

▲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 높이 5.55m '마애보살입상'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은 산 정상부에 있는 약사암에서 가까운 북쪽 사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바위의 두 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이용하여 새긴 점이 특이한데, 높이가 5.55m이고, 보물 제490호이다.
 이 마애보살입상은 다른 곳에서는 아직 비슷한 예가 없다고 전한다.
 손바닥이 드러난 채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린 오른팔과 팔꿈치를 약간 구부려 손을 편 왼팔은 다른 부분에 비해 길고 굵어 균형을 잃고 있다. 바위가 앞으로 돌출해 다른 마애불보다 조각이 쉬웠을 발 부분도 투박하게 조각돼 있다. 그 아래 바위 모양을 따라 반원에 가깝게 돌아가면 연잎을 새긴 연화대가 이 보살을 받치고 있다. 몸을 감싸고 있는 광배는 두광이나 신광이 모두 이중으로 처리됐는데, 그 안에는 아무런 새김이 없다.


 마애보살입상을 접견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향하면 처음 올라왔던 오형돌탑 부근의 능선길과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정상부에는 갈림길이 많다. 마애석불 갈림길에서 올라온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하산 코스를 잡고 대혜폭포 방향 2㎞의 이정표를 따라 간다. 이때부터 약간의 경사길이 시작된다. 한두 군데의 급경사와 너덜길을 조심해서 내려오면 다시 칼다봉 능선을 따르는 지점에 도착한다. 이번에는 오른쪽 이정표를 따른다.
 조금 뒤 겨울철이면 빙폭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바위 지대에 도착한다. 이후 너덜길과 나무계단의 등산로를 번갈아 내려오기를 40여분. 산길은 차츰 완만해지고 할딱고개에 도착한다. 할딱고개에서 오른쪽으로 나무테크를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맞은편의 도선굴이 자리하고 있는 바위암릉과 도립공원 주차장 방면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발아래로 케이블카 모습도 보인다. 
 할딱고개 전망대를 뒤로하고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대혜폭포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케이블카가 있는 상부 승강장 부근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하산도 가능하다. 조금 뒤 해운사를 지나 아래로 내려서면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부근에 도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등산로는 완만하고 다시 5분정도 내려오다 보면 대혜교 다리를 지나면 금오산 제2공영주차장이다. 채미정(採薇亭)에 쓰여 있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회고가(懷古歌)'를 회상하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악인·중앙농협 정동지점장
 
 
회고가(懷古歌)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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