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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겸 이사

솜 속에 바늘을 숨기고 있다는 사자성어다. 비슷한 말로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나 중국의 '대표 간신' 이의부의 고사인 웃음 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뜻의 소리장도(笑裏藏刀)가 있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하다는 말이다.
 새해 아침부터 불쾌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윤병세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이야기다.
 그는 구랍 31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일각에서 정부가 서두른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일본 측이 진전된 안을 가져 나왔고 46분이 생존해 계신 동안 타결해야 했다. 금년에만 9분이 돌아가셨는데, 모두 돌아가시고 타결이 이뤄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도 했다.
 윤 장관은 합의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사상 최초로 분명히 표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자신의 언어로 사죄와 반성의 입장을 표명했다"며 "위안부 문제에 사죄와 반성을 회피해 왔던 아베 총리가 외교장관 회담 직후 정상간 전화통화에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는데, 국민과 국제사회 전체에 향한 정상 차원의 명확한 사죄와 반성"이라고 강조했다.
 살아계신 동안 합의를 해야 했고, 진전된 안이기에 타결했다는 그의 말은 참담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전에 사죄와 배상을 원했던 것은 이런 식이 아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자신이 죽더라도 제대로 된 사죄, 제대로 된 배상을 원하고 있다. 윤병세 장관은 그 사실을 몰랐을까. 대통령의 대리인이기에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고 박근혜 대통령 뒤에 숨고 싶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대통령이 결정은 하지만 장관은 실무의 책임자다. 국제사회를 향한 명확한 사죄와 반성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하는 장관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은 유독 위안부 문제에 민감하다. 과거사 발언 가운데 위안부 문제만 모으면 한권의 책이 될 정도로 일본 정치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꼭꼭 숨기고 있다. 가능한 들키지 않게 어쩌다 들키면 결코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전후 70년 가까이 반복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인정한다면 그리고 아베가 나눔의 집을 찾아 살아 시퍼렇게 멍든 가슴 움켜진채 마른 숨 쉬고 있는 할머니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사죄와 반성이 맞다. 하지만 무릎 꿇는 순간, 교과서나 독도, 심지어 임나일본부까지 떠벌려 왔던 모든 과거가 치욕으로 돌아온다고 인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하지 않았고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두가지 거짓을 옹골차게 쥐고 있으면 어떤 비난도 피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집단이다. 어쩌면 몇 남지 않은 위안부의 산 증인들이 임종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합의 이후 일본은 앞잡이 언론을 저격수로 한반도를 향해 연일 찌질한 총알 세례를 퍼붓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매일같이 사실 여부가 불확실한 내용들이 보도되고 있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일본 당국자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아베의 입을 빌어 "한국 외교장관이 TV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고 말했다"며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고 전했다.
 합의 당사자인 기시다 후미오 외상은 윤병세 장관과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일본 기자들에게 "우리가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했다.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사죄와 반성'에 진심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고 그저 10억엔을 포장했다.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미확인 설로 치장돼 있다. 유난히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유사하다. 아사히는 "한국 리얼미터 조사 결과 소녀상 철거에 반대 여론이 66.3%에 달했다"며 "한국 정부는 우선 합의를 존중하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안부 할머니와 지원단체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측은 소녀상 이전이 위안부 재단에 대한 10억엔 지원의 전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측도 그렇게 알고 있다고 본다"며 "양국내 반발은 나올 만큼 나온 만큼 양국 정부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른 과제 해결 모색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돈으로 그것도 100억이 채 안되는 금액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안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윤병세나 기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연히 돈은 거부했어야 했다. 일본이 10억엔 아니라 100억엔을 이야기 해도 돈으로 인권유린의 패악을 성형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소녀상은 또 뭔가. 본질은 어디가고 소녀상 이전에 매달리는 일본의 작태를 윤병세는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 딱하기 짝이 없다. 아베가 불가역적이라고 몇번을 못을 박아도 불가역적이지 못한 것이 위안부다. 지난 세월과 능욕의 시간이 있기에 합의는 우스운 일이 된다. 아베의 말처럼 후대에 사죄의 업보를 계속 안고 갈 수 없다면 스스로 참회하고 나눔의 집을 찾아 상처받은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빌면 되는 일이다. 윤병세가 요구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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