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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방에서의 하룻밤이 몇 해 전이던가. 몸은 신기하게도 토방에서의 안온했던 그 하룻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토방은 흙바닥을 평평한 수평으로 이루어 놓았다. 그 입자가 하나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곱게 황토맥질해 마치 거위알의 표면처럼 약간 꺼끌꺼끌 하지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티끌 하나 잡히지 않았다. 부드럽기만 한 그 표면에 무슨 화학 소재의 장판을 깔고, 기름종이를 덧바를 것인가 싶기도 했었다.

 늙수그레한 주인아저씨가 장작불을 아궁이에 활활하게 지펴 아랫목에 드러누우니 살 속, 뼛속 깊이 온기가 삼투되는 것이 기분 좋게 전해져 왔었다. 토방 벽에 산더미같이 쌓아올린  장작더미는 보기만 해도 흐뭇했고 장정 허벅지만한 장작을 쌓고  불을 지펴 이글거리는 불꽃이 아깝다 싶었다.
 마치 나그네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것처럼 주인아저씨는 고구마와 감자, 군밤을 푸짐하게 담아와서는  은박지에 꼭꼭 싸서는 아궁이 안에 던져 넣는 것이었다.
 악마의 혓바닥처럼 이글거리던 아궁이 안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나자 툭, 툭, 타닥 하며 군밤 껍질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고 군고구마 익어가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주인아저씨는 은박지를 펼쳐 잘 익은 군밤과 군고구마를 담아냈고, 요즘은  골
동품으로나 치부되는 화로에 이글거리는 숯불을 담아서는  방으로 들였다. 산촌 출신에겐 이런 정서가 나남없이 있을 거라 했다.
 역마살이 만만찮으셨던 나의 조부는 한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동해안으로 떠나 몇날 며칠을 소식조차 묘연하시다가 알이 잘 밴 청어 과메기 몇 두릅과 내륙 지방에서는 여간해 접하기 힘든 대장각 미역, 문어 등을 어깨에 메고 오시곤 했다.
 그러면 온 겨우내 화롯불에 기름이 자글거리는 청어 과메기를 구워 먹거나  고구마, 군밤 등 군것질을 하며 변변찮은 입성으로도 마음만은 춥지 않은 겨울나기를 하곤 했다.
 안태고향의 그런 향수를 못 잊어 발길 닿는 대로 산촌을 해질 무렵 찾아 들었고, 황토와 살이 맞닿아 병든 짐승처럼 찾아든 나그네를 살려낼 것으로 굳게 믿었었다.

 한없이 지치고 남루한 영혼과 육신을, 황토 속에 발을 묻은 식물이 푸릇푸릇 되살아나듯 말이다.
 산짐승도 병들거나 다치면 토굴 속에 웅크리고 제 몸을 스스로 치료한다고 하니 대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상한 물고기를 지장수 속에 넣어주면 상한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고 점차 활기를 되찾아 힘차게 헤엄친다는 말도 있다.
 볕이 잘드는 창가에는 무 밑동을 잘라 유리병에 담아 올려놓은 것이 새싹이 돋아 정물화 같았다.
 윗목에는 고구마 덕장에 한가득 고구마가 채워져 있었고 서까래에는 퀴퀴한 메주가  전형적인 농촌의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출출하면 윗목에 단감이라도 깎아 자시라는 주인의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져 고향집에 온 듯 이질감이라곤 조금도 들지 않았었다.
 밤에 토방 마당에 내려서니 밤하늘에 별이 장대로 치면 살구처럼 후두둑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컹컹' 먼데 개 짖는 소리, 방으로 들어서니 TV도, 두런두런 밤늦도록 대화를 나눌 벗도 없고 혼자서 꿈나라로 여행 밖에 일정이라곤 없는 절대 고독 그 자체가 도리어 감미로웠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한 부분인 그날 밤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나. 지나온 일과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고 정리도 해보며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지저귀는 새소리, 환하게 한지 창으로 짓쳐드는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었다. 상쾌한 아침, 몸도 마음도 하룻밤 사이 치유된 듯 가뿐했다.
 마당으로 나가 체조를 하고 논둑 밭둑 길을 나가 이슬에 신발이 다 젖도록 산책을 했다. 소찬이건만 아침밥은 꿀맛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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