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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석 건축가

울산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 큰 고을이 형성되는 원삼국시대부터 목책(울)을 두른 읍성이었다. 그로부터 수 천년이 흐른 조선 성종 8년(1477년)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새로이 고을의 외곽을 둘러싼 읍성을 축조한다.  이는 유사시 군 관민이 뭉쳐 성을 지켜내는 매우 특이한 형식의 성이다.

 울산읍성은 원형으로 높이가 4.5미터이며 북정, 교동, 성남, 옥교동에 걸친 크고 우람한 석성이었다. 읍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과 문루를 설치하였고 주성문인 남문 강해루 (한양 도성의 숭례문에 해당)로부터 정북측 객사(학성관)의 정문인 진남루 즉 남문루(경복궁의 광화문에 해당)에 이르는 대로 등 4대문에서 관아구역을 향하는 대로를 내었다.

 이 대로가 나면서 성내는 4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그 중 북측 한 구역이 관아구역이며 나머지 세 구역은 읍락, 즉 고을이었다. 그러나 읍성은 정유재란때 왜군이 도산왜성을 쌓는데 철저하게 허물어서 사용해 버렸다.그 크고 웅장하던 읍성은 물론 4대문과 화려한 문루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울산 도시역사의 중요한 바탕이 사라지고 점점 잊혀져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미래로 향하여 울산의 자존으로 울산도시역사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읍성의 복원은 객사 등 관아구역 복원만큼 필수적이고 중요한 요소다.

 읍성의 완전한 복원은 현재의 도시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관아구역의 북쪽, 동문에서 북문에 이르는 읍성이라도 복원하여야 한다. 이 성벽은 관아구역의 배경으로 상호 조화를 이룰 것이다. 성벽을 이용한 세계적 공연예술 행사인 프랑스 아비뇽, 스코틀랜드 애딘버러 페스티벌처럼 공연장 무대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중구 교동 일원의 주택 재개발정비사업(아파트 건립사업) 일부를 변경하여 읍성 안쪽 토지에 계획된 아파트 건립을 취소하는 대신 사업에 불이익이 없도록 아파트 용적률·층수 등을 완화하는 인센티브를 주면 될 것이다. 또한 읍성의 4대문과 문루를 복원해야한다. 어렵다면 읍성의 상징인 남문 강해루라도 복원해야 한다.

 4대문에서 관아구역에 이르는 옛진은 다행히 오늘날 장춘로, 동헌길 등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4대문 위치비정도 어렵지 않다. 강해루는 성남동 구 상업은행 남쪽 근방으로 추정된다. 이제 울산의 관아구역과 읍성복원을 이룩해 울산이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보여주자. 이를 위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복원 사업이 성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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