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석씨는 희귀성이 되고 말았나
왜 석씨는 희귀성이 되고 말았나
  • 울산신문
  • 승인 2016.01.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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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역사파일]
조갑제닷컴 대표

우리나라 성씨 랭킹을 보고 있으면 수수께끼 같은 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 인구 센서스에서 1등은 김씨로 약 993만 명이었다. 전체 인구의 21.6%이다. 2위는 이 씨로 약 679만 명. 14.8%. 3위는 약 390만 명인 박 씨로 8.5%이다. 김·이·박 씨는 왕성이다. 김 씨는 신라·금관가야 왕성이고, 이 씨는 조선, 박 씨는 신라 왕성이다. 본관별 랭킹은 1위가 김해 김씨로 약412만 명, 2위는 밀양 박씨 303만 명, 3위는 전주 이씨로 260만 명이다. 4위는 경주 김씨 174만 명이다.

 그렇다면 김·박 씨와 함께 신라 3대왕성인 석 씨는 몇 등인가? 신라 56대 왕 가운데 박 씨가 6명, 석 씨 8명, 김씨가 42명이다. 박 씨보다 더 많은 왕을 배출한 석 씨이니 그 후손도 번창해 인구가 많아야 될 것이다. 그런데 석씨는 2000년 인구 센서스에서 110등이었다. 인구가 2,907호에 9,544명이다. 왕성인 석 씨가 사 씨(109등)나 부 씨(111등) 같은 희성이 돼 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 많던 석 씨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석씨족은 석탈해 이후 170년간 8대의 왕을 배출하면서 신라를 다스리다 4세기 초 김씨족에게 왕권을 빼앗긴 뒤 일부는 지금의 일본 시마네 지방에 있던 이즈모(出雲)국으로 돌아갔다는 설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석탈해는 '왜의 동북 1천리에 있는 다파나국 출신'으로 돼 있다. 여기서 왜는 지금의 북규슈에 있었다. 이즈모(시마네)는 북규슈의 동북쪽 해안지방에 있다. 다파나국이 지금 교토 북서 쪽 일본 서해안 지방에 있었던 丹波國(단바노구니)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일본 서해안, 지금의 시마네, 돗도리 인근 지역엔 진한(나중에 신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갔다. 변한(나중엔 가야) 사람들은 북규슈로 많이 건너갔다. 시마네 돗도리 인근 지역엔 신라계 왕국이, 북규슈엔 가야계 왕국이 세워졌다. 북규슈의 가야계 왕국은 왜로 불렸다. 4세기부터 이 두 지역의 세력이 지금의 나라, 교토 지역으로 진출한다. 고대 일본의 심장부가 되는 이곳에서 두 세력은 각축전을 벌여 가야계 북규슈 세력이 주도세력이 되고 통일국가인 야마토(나중에 일본으로 개명), 즉 지금의 일본을 세운다. 따라서 일본의 천황가는 출발이 가야계이고, 성은 없는 것으로 돼 있으나 가야 김씨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 듯하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유독 김해 김씨의 족보 발간 금지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는 천황가와 연관성을 은폐키 위함이란 추리를 한 사람이 언어적 관점에서 일본 고대사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전개한 박병식 선생이다.

 석씨 부족은 신라에 살다가 바다를 건너 이즈모 지역으로 가 세력을 이루었다. 이 세력은 일시 귀국해 석씨 왕권을 확립, 신라를 다스리다 권력투쟁에서 김씨족에게 패배하자 일부가 이즈모로 돌아갔다는 주장을, 박병석 씨는 한다. 그 중 일부 석씨족은 다시 신라로 건너와서 왕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석 씨는 백제, 가야, 왜와 내통해 신라의 지배층을 괴롭혔다고 한다. 김씨 왕권은 석씨 세력의 제거를 벼르고 있다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2년 뒤 행동을 개시해 석씨족을 전국적으로 학살, 추방했다고 박병식씨는 주장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일본 측 기록이 있다고 한다.

 17세기의 고문서 온좌발기는 '덴무천황 시절(서기 672~686년)에 일본과 한국 사이에 많은 사람이 왕래했고, 일본으로 귀화하는 한국 사람이 매우 많아서, 일년에 수백, 수천명이나 바다에서 조난했고, 오키섬(隱岐島)에 표착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고 적고 있다. 오키섬은 독도문제와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시마네현 소속 섬이다. 신라로부터의 보트 피플이 일본으로 몰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의 기술이다. 박병식 선생은 이 기술이 박해를 피해서 석 씨들이 일본 서해안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추정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때의 천황 덴무가 신라계인 이즈모 세력 출신이란 점이다. 그는 일본 내 신라 도래인 세력의 결정적 도움을 받고 쿠데타(임신의 亂)를 일으켜 집권한 다음에는 친신라-반당 정책을 썼다. 그때 신라는 대당 결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덴무천황은 대규모 사절단을 신라에 보내 통일국가를 이룩한 선진국의 제도를 배워가서 일본의 고대국가를 완성한다. 이 약 30년이 한일 두 나라가 가장 사이 좋을 때였다. 신라에 남아 있던 석씨족은 김씨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다가 동족 출신이 일본 천황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대거 탈출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석 씨는 희성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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