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동문학가

8년 전 떠돌이 개 한 마리가 골목에 나타났다. 용맹스럽기로 이름난 사냥개 세퍼드였다. 그러나 무늬만 세퍼드였지 모양새가 형편 없었다. 툭툭 불거진 갈비뼈는 빨래판 같고, 겁 먹은 두 눈은 동전이 짤랑거리는 저금통처럼 흔들렸다. 거기에다 혀가 없다. 앙 다물면 잃을 걱정 없는 뜨거운 혀를 도둑맞다니. 또 임신을 했고, 사람들은 잡아라 신고를 하고, 구청에선 잡아서 안락사 시킬 거란다.

 더 이상은 불행 딱지를 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비극적인 개를 덜컥 세상살이에 앞뒤 분간 못 하는 내가 돌보겠다고 해버렸다. 이 소식을 듣고 친정엄마는 '가실에 들어온 개는 복을 갖고 온대이'하셨다. 해서 이름을 '복이'라고 지었다. 갖고 올 복은 기대도 안 했고, 불쌍한 저라도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이었다. 그 뒤로 난데없는 산파 역할부터 시작해 진실로 복이를 사랑하고 돌보았다. 복이는 덩치가 큰 짐승이라 밖에서 재운다 뿐이지 낳은 자식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복이는 작은 기척에도 놀라 엉덩이 안쪽에 밀어 넣기 바빴던 꼬리를 승리의 깃발처럼 흔들었다. 그러나 모서리 없는 이 사랑이 위기를 맞았다. 지난 가을, 위층에 사는 여자가 개 냄새가 올라오는 걸 7년 동안이나 참았다며 개를 없애라고 했다.

 오갈 데 없는 복이는 팔순을 훌쩍 넘긴 시골 엄마한테 맡겨졌다. 엄마는 철 없는 딸자식의 허물을 덮듯 복이를 살뜰히 돌보셨다. 나도 녀석이 버림받은 게 아니란 걸 보여주려고 매주 고기 사들고 가서 같이 산책을 했다. 그런데도 복이는 떨어진지 오래 된 낙엽처럼 말라갔다. 급기야 몸에 종양이 생겼다. 종양제거수술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동물병원에서 벼락같은 통보를 받았다. 암이라고 했다. 곧 복수가 차고 호흡곤란이 오고 곡기를 끊게 될 거라고 했다. 삭은 가마때기 같은 복이 몸에 일시적인 힘이라도 주자 싶어 링거를 맞히려니 그거 한 병 맞을 몸도 못 될 만큼 늙고 병들었단다.

 통보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엄마는 이 엄동설한에 개를 거두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혀가 없다 보니 말끔히 핥아먹지 못해 늘 남긴 먹이에 흘린 침이 흥건하다. 이게 또 겨울이다 보니 얼어서 개밥을 줄 때마다 더운 물로 녹여야 하니 그 사이 복이가 배고플까봐 냄비고 양푼이고 손에 들리는 그릇에다 주다 보니 개밥그릇이 여러 개다.

 엄마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복이가 자꾸 마른다며 걱정하셨다. 그런데도 난 바른 말을 안 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고깃국에 쌀밥을 말아 먹어야 살이 붙는다면서, 두툼한 고깃덩이에 사골도 사고 쌀을 한 말 사셨다. 엄마는 앵두나무 옆에 걸린 백솥에다 사골에 무도 몇 개 넣어 고으신다. 무가 소화를 잘 시켜줄 거란다. 말아 먹일 밥도 뽀얗게 따로 지으셨다. 데일 혀도 없건만 먹다 탈이 날까 뻣뻣한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온도를 맞춘다. 또 해지기 전에 뜨끈하게 먹여 놓아야 밤이 춥지 않을 거라며 걸음이 급하시다.

 수의사는 복이한테 드리워지고 있는 죽음의 커튼을 걷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겨울 지나고 봄이 오듯 한겨울 같은 복이의 늙고 병든 몸에도 기특한 봄이 올 것 같아서 엄마를 속이고 있다. 엄마의 넉넉한 쌀 한 말이, 엄마의 백솥에서 끓고 있는 사골이, 엄마가 매일 많이 먹으라며 쓰다듬는 그 손길이, 죽어가는 개를 살리지 않을까. 거동이 힘든 노모를 속여 가면서까지 개가 낫기를 바라는 이 철없는 순정을, 생명줄을 쥐고 있는 그분이 보고 있지 않을까 하고 가엾은 짐승의 생명을 포기 못하고 있다.

 어느 가을, 복덩이를 가장하고 우리 모녀를 감쪽같이 속인 짐승 한 마리가 뜨듯한 고기국밥을 받아먹는다. "복이 눈빨이 좀 낫제?" 엄마가 내게 묻는다. 고약한 딸자식이 되묻는다. "그렇게 보여?" 엄마가 답하신다. "맛있게 먹어 그런지 내 눈에는 그리 보이네."

 가을에 들어온 개는 복을 가져온다는 엄마의 근거 없는 말씀이 틀린 게 아니다. 복이는 이름대로 살고 있다. 엄마와 내가 세상 살며 이토록 눈물겨운 환대를 할 기회를 주다니. 수십 수만 가지 일 중 말 못할 짐승한테 온몸 바쳐 대접해 볼 복을 받았으니 복이는 복덩이가 맞나보다. 아직은 구수한 고기냄새에 눈을 벌룽대는 사랑스러운 개, 복이. 부디 오고 있을 봄이 나의 가엾은 복이를 비켜가지 않기를.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