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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가지산과 고헌산 자락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삽재 마을이 있다. 특히 고헌산 자락에 앉아 있는 나지막한 기와집의 작은 마당에서 바라보는 가지산 자락의 사계는 사람 감정의 흐름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가 예사다.

 이른 봄에 김유정의 '동백꽃'과 김소월의 진달래는 속살이 드러난 산허리를 휘감으며 가장 먼저 핀다. 나는 그 즘 바람기 머금은 봄꽃멀미를 한다. 남편이 옆에 있음에도 누군가를 잡고 풀내 나는 사랑을 한번 해야 울렁증이 멎을 것만 같다. 동백꽃의 어지러운 사랑이 진달래 무더기에 스러져 독사를 만난다 해도 생기 충만한 봄기운은 외면할 수 없을 듯하다. 벚꽃이 무리를 지어 흩날리거나 오동꽃이 껑충한 사이로 계절의 붓 끝은 연두와 녹색으로 회색을 품으면서 봄은 완성된다.

 처음 삽재에 올랐을 때는 여행 중에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산마을로 다가왔다. 그러나 몇 해째 이 길로 출퇴근을 하는 사이에 마을은 스쳐 지나는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각별한 곳이 되었다.
 고헌산 자락의 삽재에는 대문이 없어 속이 훤히 보이고, 지붕이 낮은 집 몇 호가 서로 정을 나누는 오래된 마을이 있다. 낡은 마루 위에 뒹구는 대소쿠리와 마당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장독대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댁 식구들의 일상이 묻어 있는 듯하다. 이처럼 소박한 마을에 자연은 잊지 않고 만 가지의 고유한 모습으로 마련한 봄을 선물한다.

 삽재의 여름은 몽환적인 길과 열정적인 계곡이 백미다. 석남사 입구에서 산내 방면은 안개 깔린 굽은 길의 연속이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계곡물은 기온의 미세한 변화에도 안개가 일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변화무상함은 물론 짙은 안개에 갇힌 날은 선계에라도 든 듯 이채로운 길이다. 덕현 계곡을 안고 누운 골짜기에는 물소리와 여름 꽃이 벌어지는 소리, 시시각각으로 뻗어나는 초목의 행진곡이 어우러져 생명의 절창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삽재에 말복이 오면 사위는 입정에 든 듯 정적이 흐르고 내밀해진다. 마을의 냄새는 구수해지고 마당에 내리는 빛깔도 맑아진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행선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계절의 변화에도 구색이 맞아야 운치가 있다. 그 으뜸이 사람이다. 여름을 넘긴 노인들은 말言을 삼켜 봉이 더욱 커진 단봉낙타가 된다.
 삽재의 가을은 양단같이 온다. 어디를 둘러봐도 도드라진 고운 빛깔은 눈이 부신다. 그와 같은 상감을 어느 장인이 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아름답고 풍성한 삽재의 가을 길을 지날 때마다 빈약한 내 가을에도 살이 오르기를 기도한다. 좀처럼 익지 않는 내 안의 풍경은 곱게 물들지 못하고 여기저기 상그러운 모습이 가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입동 언저리에 삽재 마을을 지나다 창가에 불빛이 순한 집을 만나면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정갈한 솜이불 한 장 깔아놓은 온돌방의 아랫목에 두 손과 발을 밀어 넣고 생면부지의 촌로와 이물 없이 앉아 눈 내리는 가지산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보내도 좋을 듯싶어서다. 내 생애의 무늬 중에 그와 같은 하룻밤이 있다면 두고두고 흡족할 것이다.

 사람은 세월의 두께 만큼 여물어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산 속에 살 때나 산 아래에서 살 때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자연보다 더한 몸살을 앓으면서 세월의 마디를 만들곤 한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때는 사람이 물러 곧 허물어질까 두려울 때도 있지만 갈대처럼 일어난다. 사람도 자연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삽재 마을을 가슴에 품고부터는 설렘을 경험할 때가 더 많아졌다. 특히 눈이 밤새워 내리는 날은 모험적인 상상에 빠진다. 이 마을에서 지붕이 가장 낮은 집을 얻어 남편과 다시 살림을 차려보고 싶다. 언제나 들썽한 내 삶의 방식을 바꿔 살아보고 싶어서다.

 세상의 눈치 보지 않고 소욕지족을 기꺼워하는 온전한 지어미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겨울 저녁의 소박한 밥상머리 풍경 같은 것이다. 언양 장날에 물때 좋은 대구 한 마리를 사다가 무를 어슷어슷 빚어 넣고 얼큰하고 시원한 국을 끓여 머리를 맞대고 저녁밥을 함께 먹는 지아비의 유순한 여자가 되는 일이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라 인연이 두터우면 제 감정을 쏟아 다시 고르고 다듬어 자신을 곧추세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나는 삽재 마을길을 오르내리면서 거친 숨결을 다스리며 사계절 내내 많은 위로를 받는다. 한 발쯤 떨어진 거리에서 자연 속에 또 하나의 자연인 사람을 놓고 삶을 관조하고 다독이는 일이 어찌 여유로운 사람만의 몫이겠는가.

 팍팍한 삶일수록 세상에 널린 위로의 문장을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그 문장은 풀잎일 수도 있고, 별이나 한 줄기 빗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씩 뚱딴지같은 생각이 떠오를 때는 기쁨이 넘친다. 삽재의 사계처럼 자유로운 해석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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