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요일 아침 클래식 음악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서아름의 클래식 톡'을 격주로 연재한다. 피아니스트 서아름씨는 울산예고를 수석으로 입학해 경북대 음대 졸업 후 독일 로스톡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듀오 전문연주자 과정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함부르크 브람스 시립음악원에서 피아노 솔로전문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온 세상이 하얗다. 배가 산처럼 불룩한 나는 손을 허리에 얹고 뒤뚱뒤뚱 창가로 걸어가 밖을 보며 탄성과 한숨을 동시에 내쉬었다.
 2014년 겨울 울산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그날이 바로 내 첫 '이야기가 있는 피아노 콘서트' 날이었다. 10년간 유럽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친구들이 한창 국내 음악계에 적응할 때 서둘러 결혼하고 덜컥 아이도 가졌다.

 두 번째 독주회를 여는 친구와 달리 난 심한 입덧에 시달렸다. 이대로 출산하면 다음은 육아. 더이상 독주회는 꿈도 못 꾸겠지? 행복했지만 아무것도 못할까봐 불안했다. 주변에선 애가 클 때까지 쉬라고 했고, 그 말이 참 싫었다. 한국와서 뭘 했다고 쉰단 말이냐!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모든 행복을 포기하지 말아라'는 아빠가 해준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1시간 짜리 피아노 리사이틀을 하려면 적어도 하루 6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1시간만 같은 자세로 연습해도 등과 허리가 아파온다. 연습량이 많은 날은 온몸이 아프다. 연주 당일 피아니스트들은 예민하다. 피아노도 남의 것이고 무대도 낯설다. 모든게 익숙해야 할 날, 모든게 새롭다. 몇분을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을 연습한다. 그럼에도 긴장하고 실수한다. 그렇게 1시간 가량 집중력을 발휘하고 나면 파김치가 될 수밖에. 지금의 난 그런 연습량은 어림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였다. 연주에 포커스를 맞춘게 아닌 이야기가 있는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시기였고 해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울산의 한 소공연장을 찾았다. 담당자를 만나 이런 연주를 기획중인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ck아트홀의 후원으로 첫 콘서트를 열었다. 물꼬를 튼 연주회는 지난해 울산시가 후원하는 신진예술가 지원사업에 선정돼 이어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두 번째 연주회를 앞두고 한 기자가 물었다. "예술가라면 본인이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될 텐데,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질문이었다. "그냥 이게 제 인생이니깐요" 그랬다.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꿨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거창한 목적도 없고 그냥 내 인생을 살고 있는거다.

 두 연주 모두 수익금 전액은 울산의 소아암 환자에게 기부했다. 첫 연주회 후 울산대병원에서 기부식이 있던 날, 사실 그때 아버지가 같은 병원에서 투병중이셨다.
 "아빠 나 오늘 기부식 했어" 의식이 있으셨던 그때는 "금방 올 줄 알고 유학 보냈는데 그렇게 오래 있을줄 알았냐. 허허"란 말씀만 하셨다. 나는 "그 덕분에 기부도 할 수 있는 여성이 됐어"라고 했고, 아버지는 "허허허"하고 웃으셨다. 그리고 얼마후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주변 도움없이 혼자선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부모님 뒷바라지, 선생님 가르침, 남편의 배려와 이해, 후원해 준 분들과 응원해 준 관객들.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앞으로도 내가 받을 수 있는 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면서 지역음악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다. 첫 연주 후 2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또 산만한 배 때문에 제대로 앉지 못하고 노트북을 무릎에 놓았는지 배위에 놓았는지 모르겠는 오묘한 자세로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도전이다. 비록 서투르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그래도 행복하다.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어서.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