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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가락국수

                                                                     공광규

행신역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내려와
새로 지은 깨끗한 역사 위에서 철로를 내려다보면서
가락국수를 먹고 있다
 
열여섯 살 때 처음 청양에서 버스를 타고
칠갑산 대치와 공주 한티고개를 투덜투덜 넘어와
부산행 완행열차를 기다리던 승강장에서
김이 풀풀 나는 가락국수를 먹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쉬운 여섯이니 벌써 사십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선로도 많아지고
건물도 높아지고
오고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국수 그릇도 양은에서 합성수지로 바뀌었다
내가 처음으로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러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냄새와
노란 단무지 색깔과
빨간 고춧가루와 얼큰한 맛은 똑같다
첫사랑처럼 가락국수도 늙지 않았다
 
이런 옛날이 대전역이 좋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도 국수발을 닮아서 좋다

 

● 공광규 시인- 충남 청양군 출생, 동서문학으로 등단. 제1회 신라문학상, 제4회 윤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말똥 한 덩이' 등 다수.

● 여행노트
기차 여행의 낭만 가운데 하나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창밖 풍경을 한갓지게 바라보는 것이다. 선남선녀들이 낯선 이성을 만나는 설렘의, 로또같은 행운을 기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며 또 하나는 길고 지루한 여정에 대전역에 잠시 정차한 사이 허기 속에 마구 마구 걸어 넣던 가락국수의 맛이다.
 기차는 주춤 주춤 떠나려 하고 양은 냄비 속 가락국수는 아직 절반도 더 남았다. 국수 맛도 포기할 수 없고 떠나는 기차를 포기할 수도 없어 눈은 기차에 박혀있고 입은 빨리 국숫발을 어서 들이라 하고, 어쨌든 국물까지 허겁지겁 비우고 떠나는 기차에 간신히 몸을 싣고나면 그제사 국물의 감칠맛이 시나브로 입안에 감돈다. 식욕 만큼 원시적인 것이 없다고도 했다.
 많은 여행객이 대전역에서 먹어온 익숙한 맛. 이제 그 가락국수도 햄버거니 뭐니 하는 신 메뉴에 밀려 사라져가는 추세라지만 스산한 여행길에 시린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뎁혀주던 가락국수의 진한 국물 맛은 잊을 수 없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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