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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방학 휴가에 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 권을 갖고 떠났었다. 11개의 작품과 에필로그로 된 이 연작소설은 휴가지에서 읽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내용을 곱씹어가면서 읽기에는 좋은 작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꼭 다시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한 소설 중의 한 작품이다,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1980년대 초,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느 사이엔가 우리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게 된 소설이었다.

 1975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해서 1978년에 지금의 단행본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간행되었다. 당시의 소외된 계층을 그려 문학의 사회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지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교재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연작소설인 만큼 다 내용이 연결되지만, 그 연계성이 낮은 것도 있고 이야기 중심에 해당되는 부분도 있다.
 처음에 나오는 '뫼비우스 띠' 이야기에는 탈무드에 나올 법한 이야기나 나온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두 소년이 있는데 한 명은 얼굴이 깨끗하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이 더러운데 이들 중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하는 거였다. 얼굴이 더러운 소년이 씻을 거라고 학생들이 대답하자, 선생님은 얼굴이 깨끗한 소년이 씻을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얼굴이 더러운 소년은 상대방 소년 얼굴이 깨끗해서 자신도 깨끗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씻을 거라는 거였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이번에 학생들은 답을 알고 있다며 깨끗한 소년이 씻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 답변은 또 한번의 예상을 뒤엎었다. 왜냐하면, 두 소년이 동시에 굴뚝청소를 했는데 한 소년의 얼굴은 깨끗하고, 다른 한 소년의 얼굴이 더러울 리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역시 이 소설의 핵심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난장이 가족이 사는 낙원구 행복동은 재개발구역으로 20일 안에 자진철거를 하지 않으면 강제철거 한다는 계고장이 날아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980년대는 여기저기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어 제대로 보상을 받은 사람은 갑자기 돈 방석에 앉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손에 몇 푼 안 되는 돈만 쥐어지게 된다.
 새 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 행복동 주민들은 하나, 둘씩 입주권을 팔기 시작했다. 입주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지만, 영수네 가족은 식구들 모두가 돌을 이어 나르고 시멘트를 직접 발라 만든 집에 애착을 갖고 있어서 떠날 수 없다고 버티다가 입주권을 팔고 만다.

 이 과정 중에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영수와 영호는 인쇄공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대우의 부당함에 대해서 호소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경제적 약자는 노동만 착취당하고 만다.
 결국 아버지는 자살을 하고 난장이네 큰 아들인 영수는 노동조합 운동을 하다가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선고가 구형되고 만다.
 여기서 말하는 난장이는 약자를 의미한다. 반대로 이런 사회의 강자는 거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동자와 자본가, 없는 자와 있는 자, 가난과 풍요, 결핍과 만족 등 이런 이항 대립은 늘 우리 주위를 휘감싸고 있다.
 '칼날'에 등장하는 신애는 자신을 포함해서 남편을 난장이에 비유하곤 한다. "우리는 난장이라고요!"하고 외치는 그녀의 절규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1970년대 보다는 근로조건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또 다른 성격의 불평등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색깔로 분노를 표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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