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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내가 피아노를 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들으세요?"다. 음, 곤란하다. 사실 난 음악 듣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업병일까? 소리에 예민하다. 연습을 많이 할때면 집중해서 내 소리를 들으니 귀가 아프다. 파트너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피아노 듀오 연습을 할때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쉴때는 조용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을 찾는다. 연주회를 가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편하게 감상하기 보단 저 연주자는 어떻게 연주하는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프로그램은 어떤지 나도 모르게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분석하다 보면 결국 편안하게 연주를 감상했다기 보단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음악도,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도 바뀌는 것 같다. 아주 어릴적 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했다. 피아노를 잘 못 칠 때니 항상 소파 등받이 쪽으로 거꾸로 앉아 등받이 위쪽을 피아노 건반 삼아 음악을 들으며 빠른 패세지를 치는 듯 흉내내면서 꽤 오래동안 혼자 심취해 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쯤인가, 엄마가 마우리지노 폴리니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 전곡이 들어간 카세트 테이프를 사 주셨다. 그게 내 첫 번째 즐겨듣는 클래식 곡이 됐다.

 이후로도 쇼팽의 피아노 곡 발라드, 왈츠, 프렐류드 이런 곡을 사서 들었다. 알고 산 건 아니었고 집 근처 작은 음반가게에 팔던 쇼팽 피아노 테이프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게 시작이었다. 쇼팽의 모든곡이 폴리니의 작품이었는데 왈츠곡이 수록된 테이프만 빌헬름 켐프란 피아니스트의 앨범이었다. 그 두 스타일 중 나는 폴리니를 선택했고 그게 내 첫 음악적 취향의 선택이자 이후 약간의 음악적 편식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좀 더 큰 레코드 가게에 갔더라면, 내 선택의 폭이 넓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 이후로도 늘 쇼팽의 피아노 곡을 좋아했다. 그외에는 주로 감정이 많이 표현되는 낭만적이고 애절함이 담긴 그런 작곡가의 곡을 좋아했고 폴리니 같은 내 식의 표현을 하자면 짙고 진한 연주랄까? 그런 연주를 좋아했다.

 요즘 난 베토벤 소나타를 듣는다. 그것도 내 생에 첫 선택에서 선택되지 못했던 비운의 빌헬름 켐프의 앨범을 들으며 감탄하고 있다니…. 웃음이 나온다. 오랜 독일 유학생활이 내 성향을 바꾸고, 한국에 돌아와 학생에서 선생으로 역할도 바뀌고, 하루종일 엄마를 찾던 나에게 지금은 하루에 백번씩도 날 엄마라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는 꼬맹이 덕택에 새로운 호칭도 생기고,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변하면서 취향도 바뀐걸까? 

 지금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나 독일 가곡이나 감정이 절제된 곡들도 좋다. 물론 빌헬름 켐프의 연주도 너무 좋다. 음악적 포용력이 생긴걸까? 오늘도 난 운전을 하면서 101.9mhz 클래식 방송을 아무 생각없이 듣다 좋은 곡이 나오면 어느새 감동 받아 미소짓고 있는 걸 보면 결국 뼛속까지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보다. 그러나 난 지금도 사람들이 깨기 전 새벽 4시쯤의 조용한 적막함이 좋다. 이른 아침의 새소리, 산속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내딸의 웃음소리도 좋다. 모든 것이 그렇게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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