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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 김용택 시인 - 초등학교 교사 출신. 1982년 시 '섬진강' 으로 데뷔. 2012 제7회 윤동주문학대상, 1997 제12회 소월시문학상, 1986 제6회 김수영문학상 등을 수상.


한반도의 봄은 지리산을 감도는 섬진강 일원에서 가장 큰 축제를 벌이는 듯합니다. 산그늘 아래,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 물결이 풀리면서 넉넉하고 유장한 흐름을 이룹니다. 어린 고기들이 눈 뜨고 강변엔 햇쑥이 돋아납니다. 새봄이 맨발로 오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지리산이 이도령이라면 섬진강은 춘향이라 했던가요, 떼놓을래야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란 말입니다.

 박경리作 '토지'의 무대이기도 한 만석꾼 최참판댁의 질펀한 악양들이 있는 하동과 광양의 매화와 산수유 꽃이 장관을 이뤄 경향 각처의 상춘객을 불러 모읍니다. 눈 감고 아스라한 기억을 거슬러 오르면 하동 쌍계사 10리 벚꽃길을 걸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아로새긴 봄날이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날 장관을 이룬 꽃 대궐 속으로 들어서던 날의 환희는 일생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기쁨이었습니다. 따가운 봄볕에 상기된 얼굴 마주보며 아 이래서 봄이구나 생각했었지요. 단숨에 '내 생의 빛나던 한 순간'이란 시를 건졌고요. '너무 고요해서/ 벚꽃 날리던/ 그 봄날은 피안인가 싶기도 했고/ 귀 기울이면/ 꽃가루 떨어지는 소리도/ 손에 잡힐 듯했지.(중략)그 봄날의 인연이/ 전생에 한 번 만났던 사이인 것 같기도 했고/ 꿈인가 생시인가 싶기도 했어/ 치맛자락 같은 강물은 흐르고/ 어제인 듯 오늘이 흐르고….

 이처럼 좋은 풍광은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날 밤 흥청거리던 벚꽃축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을 마주한 밥상. 노래방 레퍼토리들. 지리산의 어둑어둑한 야경을 같이 바라보던 일들이 생각해보면 일장춘몽 같습니다. 청춘의 날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습니다. 머잖아 섬진강변을 수놓을 10리 벚꽃길도 분분한 낙화만을 남기고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젊음이 다 가기 전 서둘러 연인과 함께 쌍계사 10리 벚꽃길을 걸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일생에 잊을 수 없는 귀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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