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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종일 비가 내린다. 일을 하면서도 봄비 맞은 정원이 궁금해 내 촉수는 달팽이처럼 젖은 집에 먼저 가 있다. 퇴근하자마자 이미 저물어 어둠에 싸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이런 순간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가까이 있는 것들과 소소한 일상을 돌보며 주변이 무사한 것에 위안을 느끼면서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꾸리느라 시선을 멀리 두지 못한다.

 대수로울 것 없는 삶이 최근 들어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내 지각을 흔드는 거시적 환경 때문이다. 일례로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는데, 인공지능이 가볍게 인간을 눌러 버렸다.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언론매체에서 난리가 났다. 관련 학문의 석학들 또한 바빴다. 이 놀라운 현실을 인류가 납득을 하든 말든 설명해야 했다.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는 신문사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2100년에는 현생인류가 사라진다'고 했다. 소름 돋는 말이다. 사실 인류는 진화인지 변화인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우리는 부분적으로 인공지능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이 대처 능력은 물론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인공지능은 우리 속에 공존하고 있다. 벌써 많은 분야에서 소리 없이 우리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뇌 과학자는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겠지만, 강한 인공지능은 위험대상이 될 거라 경고했다. 그것은 현생인류의 종말이며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지구촌에 인간만큼 이기적이며 파괴적이고 나쁜 생명체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끝을 모르는 인간 욕망의 결과물로 인공지능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스스로 진화해가는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똑똑해진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살벌한 미래를 자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돼가는 조짐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더 이상 우리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주변 열강들과 함께 우리를 옥죄는 작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를 찾아야 할 숨막히는 대국장이 되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가해지면서 북한은 연일 시위 성격의 도발을 하고 있다. 우리에겐 인공지능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나는 아직 복권을 사 본 적이 없다. 불운하게도 거액이 걸린 1등에 당첨된다면 내 인생은 그날로 혼란에 빠지거나 이제까지의 노력과 시간의 의미가 변질될 거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본의 위력은 거인의 발길처럼 한 인간의 평생을 깔아뭉개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복권을 사려는 사람은 줄지 않는다.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단순히 넘길 일만은 아닌 듯하다.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공천 문제로 국가와 국민의 불안은 안중에도 없다. 핵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말은 귓전에도 닿지 않는 모양이다. 심지어 복권 한 장에 꿈을 맡기는 행렬을 보고도 투명인간 취급하는 듯하다. 보통사람에게는 이런 환경이 두렵다. 어린 시절 장마철에 낮잠을 자다 천둥 번개 때문에 깨었을 때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지금 주변에서 전개되는 암담한 거시적 환경 중 어느 하나라도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는 국가나 국제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지도자를 둔다. 개인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이른바 거시적 환경에서도 개인을 성장시키고 보호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주변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마치 몰려오는 쓰나미를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손이 닿지 않는 아득한 곳에 모여 동상이몽에 젖어 있다.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이 느낌은 나만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비와 함께 몰려오는 개구리의 짝짓기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마른 산수유 가지에 터지는 생명의 신비에 감동하는 섬세하고 고귀한 감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편리함보다 불편함 속에 존재하는 보석 같이 빛나는 수많은 서사를 만나는 소소한 행복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올 봄에 유난하다. 인간의 삶을 받쳐주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음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닿기를 염원한다. 그 작은 것들로 하여 인간이 정화되고 또한 모든 생명체 중에 사람이 으뜸임을 잊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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