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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벚꽃이 널브러졌다. 주말, 나들이객 틈을 비집고 벚꽃 만개한 작천정을 걸었다. 한반도가 생긴 이래 이 땅의 바람과 햇살을 받아 흙을 토해 만개한 벚꽃은 이제 봄의 화신이 됐다. 이 꽃이 불편한 이웃 일본에서는 나라 꽃으로 흥청거리지만 꽃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벚꽃 아래서 함박웃음 짓는 사람들과 어우러진다.

   사쿠라, 벚꽃나무의 일본 이름인 이 단어는 한 때 변절자를 가리키는 치졸한 말이었다.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후 정치용어가 됐다. 이 말의 어원은 일본어 '사쿠라니쿠'에서 비롯됐다. 사쿠라니쿠는 색깔이 벚꽃과 같이 연분홍색인 말고기를 가리키는 단어로 쇠고기인 줄 알고 샀는데 먹어보니 말고기였다는 괘씸죄가 증표로 붙어 있는 단어다. 변절한 옛 동지를 비꼬는 말로 쓰였기에 요즘도 몇몇 정치인은 사쿠라 소리에 이력이 나 있을 법하다.

 요즘 일본에서는 이 사쿠라가 군국주의 상징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순간 화들짝 피었다가 무너지듯 떨어지는 사쿠라를 일본정신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런 일본인에게 사쿠라는 특별하다. 특히 봄날 야스쿠니 경내는 만발한 사쿠라와 대동아 전쟁의 추억이 혼재하는 야릇한 기억의 장소가 된다. 그 기억을 우향우한 아베 추종자들은 혐한이라는 이름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순결한 꽃말의 상징성을 제국주의 정치논리에 포장해 수많은 젊음의 목을 자른 일본의 군부는 이제 사쿠라처럼 일본정신이 활짝 피어나 전쟁이 가능한 나라, 안주면 빼앗아 오는 나라로 되돌아 갈 준비를 마친 상태다. 아마도 침략의 유전인자를 사쿠라에 접붙여 줄기세포로 배양해 끝없이 세포 번식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쿠라가 온 천지에 만발하자 동백이 초라하다. 작천정 벚꽃 길에서 목격한 이야기다. 눈치없이 벚꽃 사이에 핀 동백꽃을 등짝으로 가린채 사진을 찍는 중년부인은 "몇 주 전만해도 동백꽃이 좋았는데 벚꽃 피니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며 핀잔을 준다. 역시 사쿠라 사이 동백은 어울리지 않는다. 벚꽃과 함께 피는 울산동백은 더욱 그렇다. 동백꽃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울산동백이다. 원이름은 '오색팔중산춘(五色八重散椿)'이다. 오색팔중산춘은 꽃이 피는 시기가 늦어 3월 하순부터 벚꽃과 함께 핀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그루에 여러 색 꽃잎이 여덟 겹으로 피어 오색팔중이다.

   원산지가 울산 학성인데 울산에서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가토 기요마사의 약탈욕구 때문이다. 조일전쟁 때 울산 학성을 점령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동백에 매료돼 대부분 뽑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가토에 능욕당한 울산동백은 이후 울산에서는 모두 고사했고 일본 교토 지장원에서 키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9년 일본에서 울산동백을 발견한 최종두 전 한국예총 울산지부장 일행이 삼중 스님과 함께 약탈된 지 400여년 만인 1992년 국내로 들여와 울산시청 등지에 심었다.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加藤淸正)이다. 경상도 민요 '쾌지나 칭칭나네'가 '쾌재라, 청정이 도망간다'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조일전쟁 7년간 울산을 본거지로 조선인 학살·납치 강간을 자행한 원조 사무라이다. 가토가 울산을 지배할 당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다양한 사료를 유추해보면 폭압의 정도가 추잡하고 악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필자가 1990년 온산공단 방도리 앞 춘도를 탐방했을 때 이 섬을 지키던 노인이 전해준 이야기도 가토에 대한 구비전승 사료였다. 춘도는 조일전쟁 당시 화살촉에 사용되는 대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유명했는데 왜장 가토는 춘도의 절경에 반해 이 곳에 거처를 짓고 별장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별장에 음주가무는 필수로 울산 각지의 어린 처자 수십명을 끌고와 춘도에서 향락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이야기와 그 원혼이 춘도 동백으로 피어나 봄이 오기 전 목을 자르듯 핏빛 꽃송이를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가토가 조일전쟁 하사품으로 받은 땅이 구마모토다. 어리석은 한 언론인이 울산마찌라는 친근한 이름 하나에 반해 구마모토와 울산을 친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2010년의 일이다. 가토의 발바닥을 닦고 왜놈의 오물을 치우는 종살이로 끌려간 옛 울산인들이 무더기로 모여살던 동네이름을 가토는 울산마찌로 정해 울타리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그 왜장 가토의 구마모토는 사쿠라와 울산동백, 그리고 끌려간 울산 사람들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세월이 흘러 울산 대표단이 구마모토에 가서 마라톤을 뛰고 문화행사도 오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어쩌랴. 세월은 사람을 사쿠라로 만들고 춘도의 어린처자는 눈치없는 등판 가리개로 팽개쳐 진다. 봄날, 벚꽃이 만개한 꽃길을 걸으며 부질없는 생각 몇 조각 떠오르기에 적어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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