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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은 한국 노동계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은 의미있는 날이었다.
 2005년부터 11년이나 끌어오던 사내하청 문제의 최종 모범답안을 마련한 날이기 때문이다. 즉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인 특별협의에서 최종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다.
 이 합의안은 현대차를 비롯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지회, 사내하청대표 등 소위 5주체 모두가 참여해 실현 가능한 모든 대안을 놓고 격론과 토론을 벌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합의안을 이미 두 차례나 거부했던 울산지회가 17일에 실시한 조합원총회에서 80%가량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시킨 것은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는 묵시적 인정과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합의안에는 '향후 노사간 추가협의 요구 및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사항 성실이행 조항도 들어있다.
 합의안 마련에 얼마나 지난(至難)한 고통이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11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짜낼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묘안을 끄집어내고, 참기 힘든 고통을 감내한 협의 5주체의 고뇌가 이 한 줄에 담겨있다 해도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일개 기업의 노동문제 관련 합의문 마련에 이 만큼 오랜 시간과 인력이 투입된 사례는 극히 드물 것이다. 필자가 모두에서 합의안 마련을 두고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표현한 이유다.
 그런데 뜻 밖에도 이 문제를 빌미삼아 또 다른 유사(사이비) 투쟁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있어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특히 "잘못된 합의"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때 울산지회장까지 지냈다고 하니 더욱 어이가 없다. 지금은 해고자 신분인 그는 투쟁일변도로 치닫다가 결국 자리를 내준 사람이다. "작전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오직 '투쟁'만 앞세운 '전략' 탓으로 그 자리를 빼앗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딴지를 거는 것은 추한 노동운동가의 모습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더구나 한때 자신을 따랐던 울산지회 조합원들이 압도적인 찬성률로 가결시킨 사안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적인 예의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거기다가 지금 다시 구사하는 전략 역시 참 구차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법파견 대상자 범위에도 들지 않는 2, 3차 협력업체 직원과 간접공정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보기에 참 딱하고 민망하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이 소위 노동운동가라고 자처한다면 최소한의 체면과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 아무리 세(勢)가 다급해도 본인이 내세우는 '정규직화' 대상에 들 수 없는 근로자들에게 시쳇말로 '헛바람'을 불어 넣는 것은 자칫 엄청난 후폭풍을 자초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다.
 만약 거의 그렇겠지만 현재 주장하는 정규직화가 무위로 돌아갈 경우, 자신을 믿고 조합원으로 가입해 꼬박꼬박 조합비를 내며 함께 노동가도 부르며 투쟁에 참여했던 근로자들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항변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안 되면 그만이고' 하는 식으로 일단 저질러보자는 무책임한 발상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편, 이 같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데도 아직까지 수수방관하는 금속노조도 그렇다. 현대차지부는 "하청지회는 금속노조 산하 조직이기 때문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5주체 가운데 한 주체였던 지부는 그 동안 하청지회의 무례한 행동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지부사무실을 봉쇄하여 교섭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같은 노동자라는 처지를 감안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러므로 이번 합의안 종결은 "앓던 이가 빠진 격"이라고 말해도 큰 실례가 아닐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문제는 금속노조다. 합의안 마련을 위한 협의주체로 직접 참여했고, 또 상급단체인 입장에서 자신들이 합의한 사안을 하급단체 극소수가 부정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것은 노노분열 조장을 방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계 최고의 화두인 '단결'의 정반대편으로 치닫는 이 같은 행위를 설마 어린아이 장난처럼 여기지는 아니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뭔가 분명한 조치가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지나친 관대함은 급기야 치유할 수 없는 환부(患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울러 '이참에 나도?'라는 막연한 기대심리로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투쟁대열에 동참하는 근로자들은 '실현가능성'을 냉정히 판단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불법투쟁에 참여한 탓에 엄청난 심리적·경제적 고통을 겪은 다른 노동자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여럿이 함께 하면 면책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위험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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