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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울산예총 사무처장

첫 새벽에 잠을 깼다. 알람시계는 다섯 시가 아직 10여 분이나 남았다. 이 시간에 다시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아 마루로 나와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어둑한 거실 한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소파에 걸터앉은 채로 벽에 걸지 않고 세워둔 액자의 시를 읽고 있었다.

 어머니는 잘못을 저지르고 들켜서 머쓱한 아이의 표정으로 "누가 쓴 기고, 참말로 글을 잘 썼네"라고 했다. 이 액자는 동산 이수옥 서예가님이 '시월, 그 가운데 서서'라는 나의 졸시를 울산문예회관에서 그의 개인전 때 전시했던 작품이다. 전시가 끝났다고 해서 집에 가져와 걸어야 할 벽면을 찾느라고 그냥 마루에 세워둔 것이다. 어머니는 "글씨도 참 고르게 잘 썼지만 시는 누가 썼노"라고 물었다. "글씨는 울산에서 유명한 서예가가 썼고 시는 제가 썼습니다"고 했더니 한 글자씩 띄어서 읽고 또 읽기를 수없이 했다.

 어머니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었고 소중했던 적이 고교 시절이다. 경남 의령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자 당장 시급한 것이 연락수단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만 해도 전화가 없는 지역에서 가장 빠른 통신수단은 전보였다. 전보는 기본 글자 수가 넘어가면 한 글자가 추가될 때 마다 요금이 올라갔다. 우체국마다 전보만 배달하는 사환을 두고 있을 만큼 수요가 많았다. 비용 때문에 전보 내용을 간단하게 쓸 수밖에 없는 대신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내가 진학한 고교는 특수목적고여서 학생들 대부분이 기숙사생활을 했다. 한 방에 8명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친구는 몇 없었다. 나는 학교생활 이야기를 시간이 날 때 마다 장황하게 편지로 써서 어머니에게 부쳤다. 어머니는 내가 보낸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논일을 나가서도 쉬는 시간에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문장의 앞뒤를 몇 번 왕복해서 더듬더듬 읽곤 하시지만 당신 스스로는 문장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있다.

 하룻밤에도 화장실을 대여섯 번 가야 하는 어머니는 오늘 새벽에도 우리 부부가 잠에서 깰까봐서 불도 켜지 않고 액자 앞에 쪼그리고 앉거나 소파에 걸터 앉아서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으로 시를 읽었던 것이다. 혼잣소리로 "백번 읽으면 이해가 되것지" 하시는 걸 보면 시가 어렵게 쓰여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열 번도 더 읽었는데 시도 내용이 좋지만 우째 이리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동산 선생에 대한 칭찬도 곁들였다.

 어머니의 열 번 낭독을 시간으로 모으면 서너 시간을 훌쩍 넘는다. 시를 읽다가 '해운대'라는 글이 나오자 "부산 해운대, 니가 댕겼던 기계학교 있는데 거기가?"하고 물었다. 또 '동백섬 너머 광안대교'라는 대목에 가서는 "대교가 무슨 뜻이고" 한다.

 어머니의 탐구력은 대단하다. 무엇을 하고자 하면 끝을 봐야 한다. 같이 살다보면 이런 성격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난처하게 할 때가 많다. 며칠 전에도 커피를 내려 마시는 도구를 찾다가 찾지를 못해 어디에 두었는지를 물었다. 어머니는 일단 모른다고 잡아 땐 후 내가 출근하고 나면 온 집안을 뒤져서 찾아냈다. 퇴근해보니 탁자 위에 찾았던 커피 도구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야 마는 어머니의 딱 부러지는 성격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무디어졌다. 하지만 아들 주변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어제 가져온 액자의 시도 내 작품이 아니라면 어머니의 관심은 한번으로 끝이다. 평소에도 가끔 그림액자를 들고 가면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자꾸 갔다 놓으면 집만 비좁제"하고 마땅찮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제 가져다놓은 액자는 아들의 시가 적혀 있다 보니 새벽잠까지 설치시면서 액자에 관심을 보이신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다말고 대뜸 "어디에 걸꼬"했다. 어머니의 머릿속은 온통 아들의 시가 적혀 있는 액자뿐이었다. 아침 수저를 놓기가 바쁘게 어머니는 액자 앞에 앉았다. "이 좋은 시를 쓸라커니 머리숱이 허옇게 세지, 아이구 참 길기도 기네" 타박 같은 어머니의 말에는 아들에 대한 칭찬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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