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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넘어지기만 하면 3년밖에 살 수 없다는 고개가 있다. 조심조심 디뎠지만 고개에서 넘어진 노인은 끙끙 앓게 된다. 3년 안에 죽게 되었다는 생각에 삶의 의욕을 잃은 노인에게 한 소년이 찾아간다. 구를 때마다 3년을 살 수 있으니 살고 싶은 대로 구르라는 얘기에 노인은 희망을 갖게 된다. '삼년고개'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제는 생각의 전환이다. 아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는 교훈도 담겨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생각하기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는 많다. 생각도 습관이다.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표정부터 다르다. 늘 밝은 표정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한다. 다소 불리한 입장에서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 보이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힘이 되는 사람이다.

 필자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재작년 말에 자동차가 반파되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산 지 일 년을 겨우 넘긴 경차였다. 직진 중에 갑자기 달려 나온 좌회전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해서 난 사고다. 에어백 세 개가 다 터지고, 엔진룸이 밀려들어 몸이 핸들과 의자 사이에 끼인 상태였다. 경찰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 가서 보니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마치 몸에 검정비로드를 감은 듯했다. 다리는 마비된 것처럼 뻣뻣하니 걷기도 힘들었다. 그랬을 뿐 부러진 곳도 없었고 찰과상조차 없었다. 그만하길 다행인 것이 멍도 2주 만에 깨끗이 사라졌다. 살아 있음에 감사한 사고였다. 그럼에도 지인들은 이구동성이었다.

 "상대차량은 폐차까지 됐다며? 차 당장 팔아요."

 "차에도 신경이 있대요. 사고차량이 또 사고를 낸다는데 찝찝해서 어떻게 타려고요."

 사고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한 마디씩 했다. 걱정과 관심이 고마웠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무엇보다도 고 작은 자동차가 그 큰 사고에서 생명을 지켜주지 않았던가.

 차량은 필자 대신 크게 다쳤다. 수리기간은 한 달, 비용은 500여만 원이 들었다. 그런데도 폐차는 되지 않았다. 새 차여서 차량가격이 수리비용보다 적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또한 다행이라는 필자의 생각이 지인들의 염려를 산 것이다.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차가 한 번 난 사고에 맛 들여서 연거푸 사고를 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설령 자동차에 생명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큰 사고가 났음에도 운전자의 몸이 멀쩡하다는 건 자동차의 정령이 지켜주었다는 증거다. 이런 자동차를 배신하고 처분한다면 서운한 마음에 오히려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를 일이다. 사고이력을 구실로 헐값에 넘기기에도 아까웠다. 또한 그런 자동차를 다른 사람이 산다면, 그 재앙까지 떠넘기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재앙이라면 한 번 고비를 넘긴 필자가 떠안겠다는 생각으로 수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 달 만에 만난 자동차가 무척 반가웠다. 탈 때마다 사고 생각에 조심을 하게 되니 급정거조차 하는 일이 없어졌다. 사고에 대한 기억이 날 때면 핸들 잡는 손이 더욱 겸손해진다.

 자동차는 생명체가 아니다. 운전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물체일 뿐이다. 사고도 무사고도 운전자의 성격이나 운전습관과 무관할 수가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일이 삶을 바꾸는 것이다. 무엇이든 된다고 믿으면 되는 쪽으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되는 일이 없다는 푸념은 삼갈 일이다. 그보다는 무엇이든 맘먹은 대로 된다는 생각을 가질 일이다. 그런 생각을 갖는 순간부터 스스로의 삶이 이미 부정, 불평에서 긍정 감사로 선회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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