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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구마모토 지진으로 공포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에겐 또다른 관심사가 있다. 바로 구마모토성과 전범기업 미쓰비시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인이 가장 애정을 가진 3대 성에 속할 정도로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일본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성이기도 하다. 16세기 조선인들의 한이 서린 곳이 구마모토성이라면 20세기 한국 청년들에게 지옥과 같은 기억으로 낙인된 기업이 미쓰비시다.

 구마모토성은 이번에 발생한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복구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정도의 훼손이 발생해 일본 문화재 당국이 실태 파악에 나선 상황이다. 미쓰비시 역시 구마모토 일대에 위치한 미쓰비시전기, 반도체 공장과 LCD 패널 공장이 직접적 피해를 입었다.

 구마모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울산과는 깊은 인연이 빠질 수 없다. 성을 축조한 자는 조일전쟁 때 조선인 학살과 문화유산 파괴자로 악명이 높은 가토 기요마사다. 그는 묘하게도 지진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1차 조일전쟁 막바지에 고니시와 경쟁에서 밀린 가토는 도요토미의 소환을 받았다. 일종의 문책이었다. 그런 그를 살린 것이 바로 지진이었다.

 1596년 오이타 현에서 발생한 게이쵸분고 지진과 에히메(愛媛)와 교토에서 발생한 지진은 엄청난 규모였다. 지진 당시 권좌에 있던 도요토미를 살려낸 것이 바로 가토였다. 지진이 그를 다시 회생할 수 있게 한 셈이다. 도요토미를 살려낸 가토는 곧바로 2차 조일전쟁 선봉장으로 투입된다. 이른바 정유재란이다. 승승장구하던 1차 조일전쟁과는 양상이 다른 전투에서 가토는 수비형 장수로 탈바꿈한다.

 그 본거지가 울산성이었고 서생포 왜성과 울산성은 그의 은신처였다. 조일전쟁 7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처절한 전투로 알려진 울산성 전투는 가토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됐다. 애마를 죽여 피를 마시고 인육을 먹고 버틸 수 밖에 없었던 가토는 도망치다시피 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영지에 성을 쌓았다. 바로 구마모토성이다.

 가토는 구마모토에 대규모 축성사업을 시작했다. 울산성 전투의 악몽을 거울 삼아 성 안에 우물을 무려 120개나 파고 건물 벽체와 다다미에 고구마줄기를 말려 만약을 대비했다. 일본 근대 내전에서 치열한 공방전으로 기록되고 있는 세이난전쟁 때 사이고는 1만 4,000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50여 일간 구마모토성을 공격했으나 결국 함락시키지 못하고 물러갔다. 바로 이 전쟁 직후부터 구마모토성은 난공불락 철옹성의 상징이 됐다.

 막강한 축성 능력으로 왜군의 추앙거리가 된 가토의 구마모토성도 대자연의 재앙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이번 구마모토 강진으로 성벽 상당 부분이 허물어지고 천수각 지붕 기와 등이 파손됐다. 무너진 성이 화면에 드러나면서 구마모토성을 축조한 조선인들의 굴종도 함께 재조명 되고 있다. 바로 울산마찌로 불리는 구마모토의 조선인 강제 수용지역에 서린 한이다. 가토는 조일전쟁 패전 직후 울산을 거점으로 축성에 동원된 울산 사람들을 대거 잡아갔다. 그 수가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수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토는 잡아간 울산사람을 울산마찌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며 성을 쌓았다.     

 역시 이번 지진으로 타격을 받은 일본의 거대기업 미쓰비시도 우리와는 악연이 깊다. 지난해 7월 우리의 백제 문화권과 함께 세계 유산에 등재된 일본의 군함도(군칸지마)가 바로 그것이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였던 1940년 일제는 조선 청년을 무더기로 강제징용했다. 그 중에서도 지옥의 현장으로 치부되던 지역이 군함도였다. 이곳에는 미쓰비시 제3 드라이독과 목형장, 타카시마 탄광, 야하타의 신일본제철 등이 제국주의 일본 상징으로 버티고 있다. 군함도에서 조선인 청년들은 말 그대로 굴종의 하루살이를 버티며 지냈다.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고 폭압과 노예의 삶을 견뎠다. 그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중국 징용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발표하면서 조선인에 대한 문제는 외면했다. 구마모토에 끌려간 울산 사람들을 외면한채 2010년 울산시와 자매도시로 환하게 웃었던 구마모토 시장처럼 지난 역사는 지나갔던 역사일 뿐이었다.

 최근 '태양의 후예'로 사랑을 받은 배우 송혜교가 미쓰비시 광고를 전범기업이라는 이유로 거절해 화제가 됐다. 송 씨는 미쓰비시로부터 중국에 방송될 CF모델 제의를 받았으나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으로 소송 중인 전범기업이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과는커녕 은폐에 열을 올리는 미쓰비시의 몰염치다. 미쓰비시는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을 착취한 것은 물론 살아남은 조선인마저 조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돼 버린 나가사키에 끌고 가 청소를 시켰다니 왜놈의 이중성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울산마찌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면 이번 구마모토성의 보수공사에도 울산인 동원령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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