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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술은 적당히 마시면 문제가 되지 않고 다음날 지장도 없으며, 그러고 나서는 얼마동안 또 술 마실 일도 없이 하는 일을 하면서 지나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술이 찾아지고, 없으면 잠이 안 올 때도 있고 술 마시고 실수를 하며, 다음날 그 행동이 후회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혹 다짐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생기고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 때는 술보다도 이미 자신의 마음이 지독한 고통 속에 던져진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무지 무엇이 나를 이런 지경으로 몰고 온 것인가, 사실 그 원인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술이라는 게 어떤 사람은 '네가 안마시면 되지 술 마시는 것에 무슨 이유가 그리 많으냐' 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머릿속에 술 생각이 이런 저런 형태로 계속 들고, 어느 때는 내가 정말 술을 안마시게 될 수 있겠어하는 생각까지 이미 술에 관해 많은 것이 내 삶을 파고 들어와 있는데, 이것이 간단히 내가 안 마신다고 생각하면 끝나는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지경으로 오게 된 경위, 즉 자신의 과거력이라는 것도 복잡다기하다.

 어느 경우는 술에 중독되기 전에 마음에 이미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반영되는 것으로서, 스트레스, 사람간의 갈등 등 중독이라는 한 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 정신적 사건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으며 여러 정신적 사건들의 특성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과다결정(過多決定)된 것이니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보살피듯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증상을 없애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술이 분명 내성을 가진 물질로서 뇌를 통한 중독 증상을 일으키지만 술 마시는 행동이 '일반적 심리'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각론도 필요하지만 총론도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그 환자의 성격이나 우울증 같은 것도 이해해야 술 마시는 심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조용하고 오히려 '내성적'이라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하지 않고, 사람 많은 데는 어려워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말도 많아지고 평소 이야기하지 않던 것들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평소에 자기를 '억압'하던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 같다. 술은 커피처럼 '각성제'가 아니고 '안정제'이다. 안정이 되는 곳은 '본능영역'을 억누르던 대뇌피질 영역이라서 술을 마시면 평소 억눌렸던 본능적, 공격적 행동들이 '풀려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술은 그런 억압해야하는 욕망 같은 것을 풀어놓는 것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술은 사실 시인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황홀감'을 가져오게 하는 것으로도 작용되는 게 아닌가. 신화에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처럼 술에는 영혼과 본질적인 면을 상징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정(酒精)이라고 술이 정령하고 연관돼서인가 어쨌든 우리는 제사를 지낼 때 꼭 술을 제단에 바치지 않는가. 요컨대 술에는 영혼 같은 것과 하나가 되려는 열망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억압된 욕망을 풀어놓는 것이든 아니면 술의 정령의 힘인 것이든 광란에 의한 폐해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광란이란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든 정령 같은 '마귀'에 사로잡힘이든지 우리가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자기방종(self-indulgence) 상태로 되게 내버려두면 욕망의 대상으로서 또는 요정 같은 매력의 대상이라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마귀'의 성질로서 다가오게 되는데, 그 마귀를 '입증'하는 것은 쉽다고 한다. 그것의 욕구가 좌절되거나 부정되면 악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고 새 사람이 되려면 이런 마귀를 대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불교나 브라만교, 기독교 등에서의 금욕·금주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융은 말한다. 그래서 욕망이나 정령을 자신에게서 풀려나오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대상에 잡혀있는 갈망을 병 속에 가두라(bottle up)고도 한다. 그럼 고통스러운 시간을 갖게 되겠지만 욕망에 지배당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이 그렇게 욕망이나 정령을 병에 가두면 그 정령 같은 욕망은 병 속에서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기분 나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얼마간 지나면 조용해지고,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그럼 그 병 안에서 자라나는 어떤 단단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말하자면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인격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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