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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벌써 한주가 지나갔나? 오늘이 몇 일이지?' 본격적인 육아전쟁에 돌입한 나는 낮과 밤이 모호해진 탓에 시간 개념이 없다. 마치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주에 뭘 쓰나? 고민 중인 나에게 우리 꼬맹이들이 모두 4월에 태어난 걸 아는 지인이 4월의 탄생석이 '다이아몬드'라며 말해준다.

    다이아몬드란 소리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 낄낄 대다가 4월에 태어난 작곡가가 누가 있나 찾아보니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년 4월 1일~1943년 3월 28일)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1891년 4월 23일~1953년 3월 5일), 같은 이름을 가진 두명의 러시아 작곡가가 눈에 들어온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들은 비슷한 듯 다른 삶을 살았다.

 둘다 러시아 태생이며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였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 망명 전부터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어 망명 후에도 미국에서 환대받으며 작곡가로 살기보다는 피아니스트로 살면서 부를 축적했다. 이후 소련에서 귀국하길 권했으나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의 호화 저택에서 숨을 거뒀다.

    반면 프로코피에프는 같은 시기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미국에서 잘 풀리지 않아 유럽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소련의 거듭되는 귀국 초청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공산화된 조국 소련으로 환영 받으며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인 작품들은 독재자 스탈린의 심기를 늘 불편하게 만들어 호된 시련을 받으며 사회주의에 맞춰진 작품을 쓰기를 강요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식지않는 작곡에 대한 열정은 자신을 발전시켰으며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렇게도 그를 괴롭혔던 스탈린은 공교롭게도 프로코피에프와 같은 날 사망했다.

 라흐마니노프도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야심차게 발표했던 교향곡 제1번이 실패하자 그 충격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한동안 작곡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최면요법과 자기 암시요법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 그 시련을 이겨내고 발표한 곡이 바로 그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이 작품은 대성공을 이루며 잃어버린 그의 자신감과 명성을 되찾아준다.

 나도 이 곡을 좋아한다. 아니 그의 모든 작품을 사랑한다.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애절한 멜로디는 이 곡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모든 작품에서도 한결같이 나타난다.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곡은 그래서 더더욱 그의 애절함이 절절하게 표현된다. 피아노가 표현할 수 없는 음색을 현악기와 관악기가 더해지면서 여러 악기가 함께 어울려 내는 음색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더더욱 매력있게 만든다. 그냥 이유없이 울고 싶은 날 행복하게 나를 울게 해 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그의 음악이랄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곡을 듣게된다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 뭉클하고 오는 감동이 솟아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확실한 그만의 스타일로 비슷비슷하다고 감히 표현한다면 프로코피에프는 그보다 더욱 다양한 스타일들을 작품에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서 직접 동화를 쓰고 음악을 작곡한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라던가 발레음악 '신데렐라' '로미오 와 줄리엣'과 같은 음악들은 그의 다양한 작품성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 모두 혁명과 전쟁 속의 힘든 시기에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나 자신들의 작품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 불멸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들의 작품 또한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열렬히 사랑받으며 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서 반짝반짝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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