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아니스트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천재 아들과 그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기 모성애를 뛰어 넘는 부성애가 있다.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이다. 아들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작품 수는 어마어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동이였던 그는 어릴 적부터 작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독일 뮌헨으로 첫 연주여행을 떠나면서 세상에 신동이 나타났음을 알렸다. 그렇게 시작된 모차르트의 연주여행은 유년기 내내 이어졌고 그렇게 여행을 하며 자란 모차르트는 성인이 된 후에도 늘 같은 곳에 머무는 예술가는 비참해진다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자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 유럽을 여행하면서 모차르트는 음악을 배우고 익히면서 성장했고 그 곁에는 늘 아버지가 함께 했다.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그의 일곱 번째, 막내 아들에게 그의 모든 애정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잘츠부르크 궁정 음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가였으나 명성을 떨친 위대한 음악가가 되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대신 실현시킬 수 있었던 자식이 바로 막내 아들 모차르트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섯명의 자식을 유아기에 먼저 떠나보내고, 넷째 딸과 막내 아들만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런 귀하디 귀한 자식이 남다른 재능까지 보이니 세상 어떤 아버지가 그런 자식을 애지중지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천재 아들은 아버지의 자랑이였으며, 연주로 벌어들인 돈은 집안의 부를 축척했다.

 하지만 길고 힘든 여행을 아버지하고만 다녔던 어린 모차르트는 늘 엄마 품을 그리워했고 커서도 사랑에 목말라 했다. 아마도 어린 소년에게는 그 모든 것들과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과 욕심이 그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성년이 된 자식이 연애 감정을 느끼거나 결혼하는 것까지 그의 아버지는 반대하며 탐탁치않게 여겼다.

 이렇게만 보면 나쁜 아버지 같기도 하지만 또 달리 들여다 보면 아버지가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도 있다. 모차르트는 음악적 재능은 너무나 탁월했지만 사회 적응력은 보통 사람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유복하게 자랐으나 말년에 가난에 찌들렸는데 그것은 돈을 못 벌었다기 보다는 그의 낭비벽 때문이었다고 하니 경제관념 또한 많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 아내로 맞은 여인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경제관념이 부족했으니 아버지는 그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찌됐던간에 그의 아버지를 빼고서는 모차르트의 인생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매순간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같은 상황 속에서 내가 단지 딸이기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엄마가 된 지금 달리 보이는 것들이 많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 또한 그런 것들일 것이다.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해도 곁에 그를 사랑과 헌신적인 희생으로 돌보았던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모차르트를 기억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유명 음악가 뿐 아니라 스포츠, 연예계 스타들 역시 어린 시절 그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던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웠던 적이 많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어린시절 항상 연습하라고 말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운 적도 많았지만 그런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 좋은 남편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좋은 시부모님 또 꼬맹이들까지 얻게 됐으니 난 참 복이 많기도 하다.

 따스한 햇볕이 좋은 5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