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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시인 - 1988년 시 '칼레의 바다'로 데뷔, 2008 제2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사람살이가 만만치 않은 것 또한 현실. 살다보면 관계에서 받는 상처로 심신이 지치기 일쑤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란 것이 시지프스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허덕한 고개를 넘어서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오죽하면 고해의 바다라고 했을까요.
 일과를 마치고 귀가해 지나온 하루를 되돌아보면 화약 냄새 자욱한 전장의 치열함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가까스로' 힘에 부치는 하루를 마감하고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의 소박한 평화가 있는 밥상을 물리는 시간. 가정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활주로. 험난한 세파를 헤치고 당도한 항구. 두 척의 배가 가위로 팽팽한 비단 폭을 가르듯 수면위의 고요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포인트는 왜 시인은 항구에 들어온 두 척의 배船를 말하다가 느닷없이 '벗은' 두 배腹라는 의도적 활유를 썼을까 하는 시적 장치의 궁금증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의인화의 제시어가 보여주듯 배船를 배腹로 형질 변경을 해보면 시가 가 닿고자 하는 착지점에 무난히 도달할 수 있습니다. 복심이란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환하게 읽어내는 사이'란 뜻이듯 부부보다 더 배가 맞는 사이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김종삼의 시 묵화처럼 노파가 물 먹는 소 목덜미에 손을 얹고는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위로를 주고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에둘러 말하지만 시인의 궁극은 따스한 가정은 곧 위로를 주고 받는 곳이라는 메시지. 가정의 달 오월.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먹이사슬의 세계에서의 피 터지는 경쟁은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자 본능.
 거친 파도와 싸우며 어로를 마감하고 무사히 돌아온 어부와 반기는 아내가 나누는 정다운 대화 같습니다. 일에 지친 남편을 맞아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아내의 말에 남편이 대답합니다. "응, 바다가 잠잠해서." 밀레의 만종을 연상케하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어느 포구에 가든 낙일이 수평선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석양 무렵이면 이런 고즈넉한 풍경 하나쯤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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