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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올해 초, 보수 성향의 한 단체에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시를 공모한 적이 있다. 대통령 찬양시를 공모한다는 발상도 놀랍지만, 수상작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우수작과 입선작의 수상을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져 놀라움이 더욱 커졌다.

 최우수작은 'To the Promised Land'라는 제목의 영작시인데, 겉보기엔 찬양시이지만 총 11행인 시의 앞글자만 따서 읽으면 'NIGAGARA HAWAII'가 된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이 유명한 대사를 통해, 4·19 혁명 이후 권좌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을 간 이승만 대통령을 풍자하는 셈이다.

 입선작 '우남찬가'는 한 발짝 더 나간다.  '한 송이 푸른 꽃이 기지개를 펴고/ 반대편 윗동네로 꽃가루를 날리네/ 도중에 부는 바람은 남쪽에서 왔건만/ 분란하게 회오리쳐 하늘길을 어지럽혀/ 열사의 유산, 겨레의 의지를 모욕하는구나'로 시작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무한한 찬사와 찬양을 보내다가 '보아라, 새싹들아. 그의 발자취를/ 도와라, 청년들아. 그 가치의 보존을/ 연습하라, 장년들아. 그 걸림없던 추진을/ 맹위롭게 솟구친 대한민국의 역사는/ 학자이자 독립열사였던 이승만 선생의 역사이니/ 살아라, 그대여. 이 자랑스런 나라에.' 하면서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까지 잊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찬가이다. 하지만 앞 글자를 세로로 읽어보면 '한민족분열, 친일인사고용, 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등과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 대담한 세로드립에 누리꾼들은 열광을 하고, 행사를 주관했던 단체는 수상을 취소함과 아울러 수상자들을 명예훼손죄와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언론사나 방송사에선 이것이 과연 법에 저촉되는 행위인지 전문가의 의견까지 다투어 내놓았는데, 심사에서 걸러내지 못한 주최 측의 잘못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인 듯하다.

 이 일련의 해프닝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제쳐두고라도, 권력자를 향한 맹목적인 추종과 찬양이 얼마나 민심과 이반되는 행위인지 잘 보여준다. 작가가 아닌 심사위원이나 해당 단체 관계자의 입장이 되어 "한 줌 용기의 불꽃을 흩뿌려/ 강산 사방의 애국심을 타오르게 했던/ 다부진 음성과 부드러운 눈빛의 지도자/ 리승만 대통령 우리의 국부여"와 같은 문구를 보라. 이 열렬한 찬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알려진 세종대왕도 받아보지 못한 찬양이요 찬사일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과는 세로드립으로 적시되어 있는데 비해, 그 공은 용기의 불꽃, 고매한 지략, 파란 기백과 같이 모호하고 공허하기 그지없다. 사실 이 찬가는 몇 구절만 바꾸면, 그 대상이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라 찬양받고 싶어 하는 다른 누구로 이름을 올려도 상관이 없을 듯하다. 결국 찬양할 일이 없는데 찬양을 하려하니 이처럼 애매하고 두루뭉수리하고 공허한 찬가가 만들어지고(아니, 사실 통렬한 비판인 줄도 모르고) 수상작으로 뽑히는 것이다.

 총선과 가습기 살균제 문제, 몇 차례의 강력 사건 등으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사실 잊고 지냈던 이 해프닝이 새삼 떠오른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6주년을 앞두고 불거진, 자신은 당시 광주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신군부 최고 실세였던 전 전 대통령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최근 화제작인 '곡성'을 방불케 하는 미스터리다. 그 영화에 대한 어느 평론가의 한줄 평처럼 '곡소리 나고 억 소리 나는' 이야기다.

 아직 유족들이 고통 속에 삶을 견디고 있는데도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니,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희석되고 왜곡되기도 한다면, 우남찬가가 아니라 일해찬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촌철살인의 풍자 이전에 우리가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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