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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사회에는 '떼법'이 난무했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하며 '떼'를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부당한 요구나 청을 들어 달라며 억지를 부린다는 의미의 '떼'와 실증적인 논리와 강력한 실행력을 갖는 '법(法)'의 합성어가 '떼법'이다. 누가 지은 말인지는 몰라도 시대상을 잘 반영한 신조어였다.

 사실 '떼'는 사리판단력이 부족하고 아직 지능이 덜 여문 어린애들이나 쓰는 매우 저급한 자기주장의 한 방법이다. 때문에 '떼법'이 횡행하고 그게 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면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헌데 문제는 그런 일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타인의 눈물샘·감정샘을 자극하기 위해 '약자'라는 포장을 하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교활하고 지탄받는게 마땅하다.
 지금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앞 도로변과 건너편에는 '현대차 노동탄압 규탄한다' '노조활동 보장하라'는 등의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나 골판지를 볼 수 있다. 농성자들도 스무 명 안팎이다.
 때때로 고성능 스피커로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고, 집회도 한다. 언뜻 보기엔 '오죽 했으면 저럴까?' 하는 동정심이 생길 수도 있다. 만약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당신은 시쳇말로 '낚인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조금만 아는 사람은 고개를 흔든다. 이들은, 현대차에 자사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사가 용역(도급)을 준 물류업체의 근로자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감을 준 기업(현대차 부품사)의 직원도 아니고, 현대차 직원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노조활동 보장하라'는 문구 뒤에 '현대차 직원으로 채용하라'는 본심(과욕)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 식 시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우리도 현대차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작업장이 현대차 안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외국인이 여행차 한국에 입국한 순간 "나도 이젠 한국인"이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대차 안에는 하치장이 곳곳에 있다. 원활한 차생산(부품 공급)과 납품업체의 편의를 위해서다. 현대차 뿐만 아니라 왠만한 제조업체는 이 같은 방법을 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과다.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를 두고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유독 현대차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현대차의 임금·복지가 남다르기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이들 가운데 20명은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도 했다. 안 되면 그만이고 일단 한 번 찔러나 보자는 것인지, 아니면 승소에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역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다.
 이처럼 "법으로 판단받아 보자"는 것은 패소가 확실한 사람도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단으로 작업장을 이탈해 오가는 행인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농성을 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행인과 주민의 불편보다 소수의 주의·주장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탓인지 관련 행정당국에서는 수수방관을 하고 있는 것도 이참에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보다 못한 한 물류회사 임직원 20여 명은  빨리 회사로 돌아오라는 호소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에겐 마이동풍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하물며 현대차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자기들 사업장 관문 앞에서 농성을 하는 것을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 외면할 수 없었던지 현대차지부에서도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결국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지부 역시 그들의 요구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10여년을 끌며 온갖 오해와 시달림을 받다가 노동 3주체(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하청지회)가 함께 마련한 '특별협의 합의문'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숟가락을 들고 와서 "같이 먹자"고 하니 기가 막힐 수 밖에.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이 있다.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찾는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될 일과 안 될 일, 할 일과 안 할 일이 있다. 우직한 동물의 대명사로 불리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을 때에야 등을 비빈다.
 현대차가 아무리 부러운 직장이라도 울타리 안에서 잠시 일했다는 이유로 "나도 현대차 직원"이라고 주장한다면, 업무차 출입하는 방문객들도 현대차 직원이 돼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떼법'은 이제 그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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