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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울산에 장미가 활짝 폈다. 조금 일찍 찾아온 더위에 5월의 저녁이 마치 한여름과 같다. 덕분에 대공원에 친구, 가족들과 함께 자리 펴고 앉아서 북적북적 사람 소리 들으며 장미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누렸다.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와 함께 성악가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 제목과 내용은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한 노래들이라 어느 광고음악에 나왔었는지 친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게 엇갈린다.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흥얼거려도 아무거림낌이 없다.

 이것이 바로 야외 음악회의 묘미겠지. 그중 한 아리아는 바로 오페라 '투란도트'의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 테너가 이 곡의 클라이막스를 부를때쯤 친구 한명이 말한다. "아~ 시끄러워" 또 다른 이가 말한다. "노래는 참 잘하는데…"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야외음악회라 마이크의 음향이 한껏 시끄러워진 상황이였다.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면, 내용을 알았더라면, 시끄럽게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쉬워하며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03년 여름 밤. 대학 4학년때,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오페라를 봤다. 잔디에 돗자리 깔고 뭘 먹으면서 봤는데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오페라 감상에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곤조곤 옆 사람과 대화하며 더 집중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며 울산에서도 야외 오페라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 음악회는 청중 입장에선 좋지만 연주자 입장에선 어려운 무대다. 야외다보니 연주를 하면서 소리 듣기가 힘들고 클래식 연주는 마이크를 쓰지 않는데 야외 음악회에서는 아무래도 마이크를 써야하니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야외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은 기억들은 늘 좋았던 것 같다. 독일 유학 전 체코에서 2년간 공부를 했다. 그때 아마 음악회를 제일 많이 다녔던 것 같다. 학생이라 한국돈 1~2천원밖에 요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유명 연주자의 음악회는 아니었지만 좋은 연주도 많았다. 그 도시에 오래된 성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그곳에서 음악축제가 열렸다. 공원을 걸어 낮은 언덕 위에 성이 있는데, 보통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조용한 성이다보니 아무런 소음이 없는 여름밤 그곳에서 클래식 연주를 듣는 것은 환상적이었다.

 또다른 유명한 야외공연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청 앞에서 열리는 뮤직필름 페스티벌이었다. 오페라 극장의 시즌 오프 기간으로 공연을 하지 않는 동안 열리는 이 축제는 여러 나라의 유명한 오페라나 콘서트의 녹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아무래도 도심 속 광장에서 열리다보니 집중이 덜 되긴하지만 또다른 재미가 많다. 여러번 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무슨 오페라를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 짜릿한 분위기만큼은 생생히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독일 '발트뷔네 콘서트'. 직역하면 '숲의 무대'다. 말그대로 숲속에서 열리는 야외 음악회다. 독일 유학시절 여름방학 중이었던거 같다. 기숙사 앞방 친구가 물었다. 그 친구 역시 독일인이 아니었는데 베를린에서 발트뷔네 콘서트가 있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당시 그 친구와 별로 친하지 않아 자세히 묻지 못한 것도 있었고 다른 일도 있어 가지 못하겠노라 했다. 후에 친해지고 나서 물어봤더니 그때서야 그 콘서트가 얼마나 유명하고 굉장한 것인지 말해주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놓친 것과 유럽에서 가장 매혹적인 야외 콘서트장에 못 가본 것이 지금도 많이 아쉽다. 여름날의 내 추억들을 되새겨 보니 꿈을 꾸었던것만 같다.

 울산에도 이번 장미축제 동안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와 폴 포츠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아쉽게도 난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좋은 추억을 갖게 됐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여름 또 한 번 오페라나 클래식 연주회가 야외 음악당에서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 번 내가 한여름 밤의 꿈을 꿀 수 있도록 말이다. 조금 일찍 무더위가 찾아온 6월의 밤 나는 이렇게 또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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