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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에서
                                                                          구광렬

땡볕에 똥개 한 마리
눈을 지그시 감고 목탁소리에 맞춰 혀를 움직인다

날름날름
그의 혀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있는 양
낭창거린다

목탁소리가 그친 뒤에도 그의 혀는 멈추질 않는다
비구니스님이 드르륵, 방문을 열고 나와도
루즈 같은 성기를 핥는다

오, 나무아미타불!
그처럼 유연한 목을 갖는다면 난, 결코 중이 되지 않는다
난, 나와 결혼을 한다


● 구광렬 시인 - 멕시코 국립대 중남미문학과에서 중남미 문학 전공. 1986년 멕시코 문예지 'El Punto'에 시를 발표하며 멕시코·중남미 문단 등단. 현대문학에 '들꽃' 발표하며 등단. UNAM동인상, 멕시코문협 특별상, 현 멕시코국립대 연구교수,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 류윤모 시인
난, 나와 결혼을 하겠다? 이 무슨 해괴. 이성도 아니고 동성도 아닌….
 하지만 시인이 은유하듯 궁극적 종교의 본질은 정신적 위로를 받자는데 있는 것. 이 살벌한 세상, 내가 나를 위로하며, 아니 자위하며 살아 갈수만 있다면, 그 누가 구태여 종교에 귀의하겠습니까.
 해마다 들꽃이 핀 한적한 기림사 뒷길을 오랜 세월 남몰래 작은 배낭을 메고 찾곤 했습니다. 기림사를 가다가 못미처  왼편 산자락을 끼고 오르면 산 옆구리에 혹처럼 붙은 칠불암이란 암자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그 절에 아직도 이 시의 주인공께서 이 대략 난감한 포즈로 생존해 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요사채를 가든 이런 풍경 하나쯤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인의 눈은 이런 사소함마저도 예리하게 포착해 즉각 시로 웅뚱그려 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처럼 상식을 깨거나  뛰어넘는 사람들이 시인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 추방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파격에 대한 요령부득이 아니었겠나 싶은 겁니다. '시'라는 영역을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한 장애물로 규정하면서 시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이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있다며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발한 상상력은 국가 먹거리에도 훌륭한 자극제가 된다고 봅니다. 영국과 인접한 아일랜드를 출장차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다른 도시로 버스를 타고 이동 중 갑자기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뭐라뭐라 선창하자 승객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큰 소리로 복창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저게 대체 뭐하는 거냐고 가이드에게 귓속말로 물으니 시를 낭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시가 외면당하는 국내 현실이 떠올라 울컥 했었습니다.
 척박한 국토에 인구 수백만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가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데는 시 읽고 쓰기를 어릴 때부터 체화한 덕분이라고. 이 작은 나라에 예이츠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만도 3~4명. 더 놀라운 건 그에 버금가는 시인들이 수두룩하단 것이었습니다. 시에 대한 범국민적 열광이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 선진국 반열에 올리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정서가 사막화된 사회에서 시는 울림으로 인간의 감성을 움직입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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