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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거실 책장에서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 한권을 발견했다. 그동안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날따라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뭔가에 홀린 듯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나서 1989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혼란이 다시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한 듯하다.

 오늘 살펴볼 작품은 프랑스 레지스탕스문학의 지도적 역할을 한 작가 클로드 모르강(1898~1966)의 자서전적인 장편소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44년 이었고,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89년이었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나'라는 화자 베르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그 포로수용소에서 오랜 친구인 자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자크는 베르몽의 아내인 클레르의 친구이기도 하다. 베르몽은 그동안 사랑하는 아내가 자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묘한 질투심에 사로 잡힌다. 베르몽은 어서 빨리 자신 혼자만이라도 이 수용소에서 벗어나서 클레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크가 탈출을 했다. 베르몽은 자크가 클레르를 만날 것이라 생각하며, 자크가 붙잡히길 바랬다. 결국 자크는 비참한 상태로 수용소에 잡혀왔다.
 베르몽은 기뻤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도 고문도 자크를 변하게 하지 못했다. 자크는 아픈 몸으로 열렬히 프랑스 해방을 위해 부르짖었고, 독일군에게 총살당하는 인질들을 염려했다.
 이러한 자크를 보면서 베르몽은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인 자신의 사고를 부끄러워했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20대에 치열하게 화두처럼 생각했던 고민이 50대가 뒨 지금에도 여전히 화두처럼 남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자크가 죽었다. 숨막히는 수용소 생활에서 매일같이 죽어가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들은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인 죽음을 고요히 맞이해야만 했다.
 베르몽은 22개월이라는 긴 포로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 클레르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얼마나 꿈꾸어온 생활이었던가.
 그러나 프랑스는 아직도 독일의 점령하에 있었으며, 아침마다 독일군의 합창소리가 들렸다. 감옥 바깥세상은 감옥과 비슷한 세상이었던 것이다.

 베르몽은 프와티에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대학교수였던 베르몽의 아버지는 자신이 세운 이미지에 따라 베르몽을 교육시켰고, 그것이 베르몽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베르몽의 아버지는 집안에서는 소위 전능한 가부장적 전통을 유지했으며, 이에 어머니는 가정과 자식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가정에서 자란 베르몽은 아내 클레르가 자신의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했을 때, 클레르를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베르몽은 클레르에게 가정적이고 소유적인 사랑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클레르는 베르몽에게서는 자신을 채워줄 수 있는 그 아무것도 발견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어 성숙하게 해준 것은 오랜 친구 자크였다.

 이러한 클레르와 자크와의 관계를 베르몽은 클레르가 쓴 수첩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 수첩에는 베르몽을 만난 사연, 베르몽에 대한 아내의 생각 등이 적혀 있었다. 이 수첩을 읽은 베르몽은 결국 파리 레지스탕스에 합류하여 반독일 운동에 가담한다.
 소설 속 스토리는 여기에는 끝난다. 베르몽이 꿈꾸던 것은 설령 독일군이 계속 지배를 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어떻게든 평화롭게 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르몽은 아내의 수첩을 읽고 나서 제2의 자크가 되어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에 묻히더라도 끝까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투쟁의 길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며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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