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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그게 뭔지를 몰랐다. 볼일을 보고 무심코 내려다 본 팬티에는 끈적한 게 비릿한 냄새가 났다. 팬티가 검정색이어서 색깔은 알 수 없었다. 오줌을 지렸나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나, 이틀이 지났나 그곳이 몹시 따가웠다. 찝찝했지만 또 들여다 볼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나, 다시 내려다 본 속옷은 뻣뻣하니 냄새가 고약했다. 그제야 엄마 앞에 바지를 내린 채 물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는 헛기침을 하더니 그거네, 짧게 답하셨다. 대신 손수건처럼 작은 기저귀를 접어주시며 거기 차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첫 꽃을 피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 막 끝나던 열세 살이었다.

 당시 가을운동회 때마다 운동복을 입었다. 흰 티셔츠에 나일론 소재의 짧고 까만 반바지를 입었는데, 반바지 끝단에는 고무줄이 들어있어 봉긋한 항아리 모양이었다. 옷이 부족한 시절이라 운동회가 끝나면 이 까만 반바지를 팬티 대용으로 입었다. 지금은 이야기 꺼내기도 부끄럽지만 당시엔 목욕은커녕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았다.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 앉았는데도 집 밖 아이들의 함성소리만 들리다 보니 일이 끝나자마자 뛰쳐나가기 바빴다. 샅이 쓸려 따가웠지만 내려다 볼 겨를 없이 말이다. 노는 게 전부였던 어린이에겐 초경은 축복도 놀라움도 아니었다.

 엄마는 월경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한 나는 어느 달도 깔끔하게 넘긴 적이 없었다. 놀기 바빠서 초경이 시작되는 줄도 몰랐던 내가 이젠 매달 월경 때문에 공부며 친구는 뒷전이고 그 처리 걱정에 전전긍긍했다.

 그런 내게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오일장 갔다 오다가 비닐에 든 뭉치를 주운 것이다. 엄마는 그걸 보이며 누가 들을까봐 비밀스럽게 말했다. 내, 장에 갔다 오다 이거 주웠대이.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포장지에 설명서도 없었다. 희고 얇은 막에 싸인 그것은 폭신폭신하니 촉감이 좋았다. 나란히 맞춘 듯 열 개가 반듯하게 들어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걸 한참 살폈다. 마침내 중학교 1학년인 내가 말했다. 그거 같아! 엄마는 당신 생각과 일치하는 게 반가운지 맞제, 맞제 하며 좋아하셨다. 그 두툼한 봉지에 '후리덤'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중학생인 나도 그게 어디 쓰는 것인지 몰랐던 거다.

 엄마와 나는 생리대란 건 짐작했지만 사용 방법을 몰랐다. 요즘은 간편한 접착시트로 돼 있지만, 당시는 생리대를 끼우게끔 앞뒤 고무줄이 있는 빨간색 위생팬티가 있었지만 몰랐다. 낡은 끈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지혜로운 엄마가 묘책을 냈다. 후리덤 양쪽을 각각 접어 꿰맨 뒤 생긴 틈으로 고무줄을 넣어 내 허리에 둘러 주었다. 기저귀 채울 때의 노란 고무줄 대신 집에 뒹굴던 검은 고무줄에 꿰어서 말이다. 나머지 아홉 개도 고무줄을 꿸 수 있도록 홈질을 해주셨다.

 엄마는 어쩔 줄 모르는 나와는 달리 흡족해 하셨다. 자식을 위해 크게 한 건 하셨다는 자부심 가득한 그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이후 가정시간에도 배우고 친구들도 초경을 시작하면서 월경에 대한 내 속앓이도 끝났다. 엄마와 나만 몰랐지 이미 세상은 후리덤을 끼워서 쓰는 세련되고 안전한 위생팬티가 널리 사랑받고 있었던 거다.

 예전에 살던 곳에 돌보던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집 세 아이와 동갑내기들이었는데 엄마가 가출한 것이다. 자식이 여섯이다 여기고 보살폈지만 뜻밖에 이사를 하게 됐다.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미안함에 집에 초대 해 함께 놀았다. 돌아가기 전 열세살 소녀인 큰 아이만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인가 눈이 동그래진 아이에게 선물을 건넸다. 생리대와 위생팬티였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것이에요? 여자아이가 나처럼 엉망진창으로 초경을 안 맞길 바라는 심정으로 준비한 거였다. 이렇게, 이렇게, 어렵지 않지? 내 시범에 아이가 키득키득 웃으며 답했다. 네. 초경이 시작되면 꼭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가방에 끼워 넣었는데 그 후 연락이 없다. 일찍 결혼했으면 아이 엄마가 됐을지도 모르는 그 아이.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예까지 왔다.

 입에 올리는 것조차 민망해 했던 엄마의 서툰 성교육에 왜 여자로 태어났나, 달아나고 싶었던 초경 시절을 지나 이제 폐경때가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몸이 무수히 꽃을 피워내는 동안 심정도 은근히 익어 초조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 가난한 소녀들이 비싼 생리대 때문에 겪는 고초가 크다는 뉴스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남의 일이 아닌 듯 마음이 동동 거린다. 여자를 완성하는 아름다운 시작이 무거운 짐처럼 괴로워서 어떡하나. 나랏일을 하는 분들은 바쁘겠지만 드러내 놓고 도와 달라 못 하는 소녀들의 어여쁘고도 안타까운 걱정을 빨리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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