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구의 아침

                                                                               전정희

배들이 퉁퉁거리며 포구로 돌아온다
몇몇이 어슬렁거리며 선착장으로 모여든다
비린내 그물에 걸린 갈매기 떼도 끌려온다
사내가 쇠말뚝에 웃음을 비끄러매고
뜰채를 들어 올리다 바다 쪽으로 휘청
기울던 사내의 중심이 물차로 옮겨진다
셈을 끝낸 활어차가 휑하니 빠져나가고
흥정을 놓쳐버린 몇 마리 갈매기들
썰물에 떠내려가는 비린내를 에워싸네.


● 전정희 시인- 1957년 경남 의령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1997). 중앙시조대상 신인상(2005),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 수상. 시조집『물에도 때가 있다』


▲ 류윤모 시인
그물이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널려있고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
 어촌의 일상은  생각없이 바라보면 짐짓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일기가 불순해 집채만 한 멍석말이 해일이라도 덮칠 때면 바다에 탯줄을 대고 살아가는 이들은 너나없이 좌불안석들이다. 넓어지면 깊어져 너머의 풍경까지도 고스란히 읽어낼 수가 있다.
 파옹의 제삿날이란 시에 태풍에 휩쓸려가 종무소식인 지아비의 설운 젯날, 영문도 모르는 오종종한 어린 것들은 하나같이 눈이, 멀건 국사발에 둥둥 뜨는 대지 비계에 꽂혀 있으니 지어미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기구한 사연인들 왜 없을까
 울산 근해에도 포구가 참 많다. 장생포, 우가포, 신명, 당사, 제전 등…. 어느 포구를 찾으면 간장 달이는 향긋한 내음이 날 테고 미역을 말리는 한가로운 일상이 눈에 들어올 터다.
 사진작가라면 긴 카메라 렌즈로 갈아 끼우고 눈에 띄는 풍경을 이것저것 박아 볼 테지만 시인으로선 스쳐 지나가는 단 한 줄을 포착해야 하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시인의 안목이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홑 그림에는 활어차가 접안하는 선착장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으나 이면의 겹 그림을 뜯어내면 비린내를 맡고 몰려드는 갈매기 떼로 환치해 돈(?)세상을 은근히 비틀고 있다. 어딜 가나 비린내 나는 먹자판 돈 잔치판. 돈이 풀리는 곳에 비린내를 용케 맡은 사람들이 몰리고 줄을 선다.
 갈매기 떼가 비린내를 에워싸고 따라간다. 긴 고무장화를 신은 사내가 어판장 바닥에 쿨렁쿨렁 낙관을 찍으며 걸어간다. 궤짝 째 하역되는 싱싱한 비린내들. 어느 포구에 가든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시인은 지나치게 맑은 물엔 고기가 안 산다거나 하는 직설적 마무리를 하지 않고 고차원의 방정식을 눈 밝은 독자에게 제시한다. 시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비린내를 맡고 몰려드는 갈매기 떼를 통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로 읽어내도록 명징한 이미지를…. 류윤모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