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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12조 원 이상 쌓여있는 사내유보금을 풀면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계는 "사내 유보금은 금고에 쌓아둔 현금이 아니라 생산 설비 등 대부분 자산 형태로 존재한다"며 "사내 유보금을 손 대는 것은 회사의 자산을 처분하자는 것과 같은 의미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 "유보금 풀면 청년실업·구조조정 막을 수 있다" 목소리
전문가 "대부분 생산 설비 등 자산형태…현금 15% 불과 저금통 아냐"

# "현금 주머니 아니라 생산적 자본의 의미"

최근 노동계는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내 유보금이라는 곳간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사간 논란이 되고 있는 사내 유보금은 무엇일까?  사내 유보금은 기업 회계 용어의 하나로 기업이 경영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을 하고 남은 금액을 말한다.

 즉 기업이 벌어들인 돈 중 주주에게 나눠주지 않고 사내에 남긴 자산을 의미한다. 일각에서 생각하듯이 기업이 차고 있는 현금 주머니가 아니라 생산적 자본의 의미에 가깝다.

 재계 관계자는 "사내 유보금이 기업 활동을 통해 남긴 금액이라는 뜻은 맞지만 그대로 현금성 자산으로 남은 것이 아니다"며 "공장 및 시설 등 현물성 자산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금융자산 형태로 기업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럼에도 사내 유보금이 어려울 때 깨뜨리는 저금통이라도 되는 양 너도나도 손을 대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른 경제 전문가도 "사내 유보금 10%만 풀면 청년 취업난이 해소되고 기업 구조 조정도 막을 수 있다는 구호가 난무하는 것은 기업 재무제표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 노조라면 사내 유보금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수 주장을 나서는 것은 정치적 계산이 깔린 의도적 행위 아니겠냐"고 말했다.

 사내 유보금 중 이른바 '현금'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전체 유보금의 15~18%에 불과하다. 실제로 삼성중공업의 유보금이 3조 원에 달하지만 운영자금이 부족해 구조 조정이라는 카드를 가지고 채권단에 손을 벌리고 있다.
 
# 현대차 노사, 소통 통해 불필요한 갈등 불식
경제 전문가는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된 자세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전문가는 "기업이야말로 투자 주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빈약한 금고라도 열어 일단 쓰고 보자는 근시안적 사고가 문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적 최고 기업인 애플이 회사의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을 하지 않고 모두 사내유보를 통해 기술 개발에 재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 전문가는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이 사내 유보가 아닌 첫 주주 배당을 했을 때 '애플의 혁신은 끝났다'는 비난 받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동계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계와 재계간 사내 유보금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현대차 노사는  조기 진화에 나섰다. 현대차는 지난 주 열린 두 차례 협상에서 사내 유보금에 대한 세부 내역을 노조에 성실히 설명해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불식시켰다.
 
# 사내 유보금 많은 기업이 투자·고용 적극

사내 유보금 증가에 대한 노동계의 비판적 시각에 대해 사내유보금이 많은 기업일수록 오히려 투자와 고용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통계도 있다. 

    전경련이 최근 내놓은 '사내 유보 자산 상하위 기업 비교 결과'에 따르면 사내유보자산이 가장 많은 10개 사의 투자는 38조 360억 원으로 하위 10개사 투자 규모인 4,291억 원의 88배에 달한다. 고용에 대해서도 현격한 차이가 났다. 고용 측면에서 상위 10개사는 최근 4년 동안 종업원 수가 1만 2,288명이 증가했지만 하위 10개 사는 같은 기간 63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내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경쟁국인 미국, 중국, 일본의 기업에 비해 규모가 뒤쳐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4개국의 시가총액 500대 비금융기업의 이익 잉여금 추이를 분석한 결과 절대액이나 증가 속도에 있어 한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혁기자 usk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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