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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월요일 아침 회진은 다른 때보다 좀 일찍 시작하는데도,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것처럼 어렵다. 하지만 월요일 오전만 지나면 금방 일주일이 갈 것이고, 지금 신경 쓰이는 일들도 지나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난 토요일 만났던, 이제는 퇴직 한 친구가 생각났다. 자신을 '백수'라고 하면서, 하지만 친구들 만나느라 더 바쁘다는 퇴직자의 생활을 소개하고 있었다.

 퇴직 후에 대해 얼마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퇴직이란 자신의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는 커다란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것에 대해 대비했다고 해도 생각지 못한 어떤 것들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토요일에 만난 친구도 그렇고, 퇴직자들이 해오던 일이란 것이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고, 필자가 병원을 떠나서 생활하지 않았듯이 거기에 빠져서 지내던 것들이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구두장이의 '세계'는 그의 구두에 속하는 준거틀로 구성된 세계라고 한다. 구두장이가 구두, 망치, 실, 송곳, 못 등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의 사물들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토요일에 만난 퇴직자 친구는 자기를 '백수'라고 표현했다. 구두장이라면 그의 사물인 망치, 실, 송곳 같은 것을 이제는 손에서 다 떠나보내고 빈손이 된 것이다. 그가 이제껏 일상(everyday)에서 해왔던 것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월요일부터 힘들게 지나갔던 그 시간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직장이나 그곳에서 보낸 세월이 무엇이었던 것인가. 퇴직해 이제는 그곳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이며, 그래서 퇴직자들은 과연 어떤 고통, 또는 행복을 그곳에서 찾게 되는 것일까. 사실 지금은 그 직업을 떠나는 것이지만, 젊은 시절 그 직업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썼던 때가 있었다. 어떤 하나의 생활이라는 것이 사실 그 생활 속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 생활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구두장이'의 작업장으로 생활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인데, 운동도 그 속에서 일이 운동일 때도 있고, 구두를 만들면 판로를 개척해야 하고, 가죽을 공급해주는 사람과의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하고, 서로 사실 안 물려있는 곳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에 제대로 뿌리 내리기 위해, 그래서 한 사람의 직장인이 되기 위해 정말 그 기초 작업들에 얼마나 많이 정성을 들였었는가. 이런 생활 터전이었고 매일 매일을 자신을 일구는 활동영역의 운동장이었던 곳을, 일률적으로 정년이라고 하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정해놓고는 그 곳에서 떠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퇴직이라는 것이 불합리한 제도인 것인가.

 우리가 잘 나가고 바쁘고 하루하루가 일로 빡빡할 때는 그것에 빠져서 쫓긴다고 몰랐었다. 그 하루하루 일상이 서로를 만나게 하며, 그곳에서 만나던 그 업무 같은 것이 구두장이의 구두처럼 우리의 세계라는 것을, 그렇게 세계로서 드러나 있었던 것임에도 일상에 빠져서는 못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참다운 자기 이해는 통상 일상 속에서 그 빠져있는 바 그것에서 반사돼 비춰지는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으로, 일상을 떠나서는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한 어떤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일하고 돈 벌고 내가 살아서 움직이던 곳, 그것을 왜 몰랐던 것인가 하고 좀 후회스럽게 한 번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는 우리의 이 나이에 퇴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게 어쩌면 적절한 시간표로서 꼭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보통 항상 사회집단에서의 외부 역할로서만 시간을 보냈다. 일이 없으면 내가 '나'로서 할 것도 없다고 느끼며 나의 고유한 존재는 잊는 것이다. 그렇게 '눈앞'에 (present-at-hand) 보이는 삼인칭 그들의 시점이 그러나 나의 인생의 시점은 아니다. 내 인생 해석의 시점은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암암리 송곳·망치 같은 도구로서 이해되는 일인칭적 시점(ready-to-hand)으로,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며 살았던 인생으로는 아직 '검토'돼 보지 않은 나의 삶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의미가 이해되지 않은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닌가. 겉으로 어엿한 일자리라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자기실현에서는 거꾸로 자신의 존재를 은폐시키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퇴직은 삶의 퇴직이 아니다. '직업'만 바뀐 것일 뿐, 오히려 숙제는 더 많은 일상이 후반기의 중간쯤에 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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