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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문구와 함께 좋아했던 노희경 작가의 TV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종영했다. 
 이 드라마를 볼 때면 입가엔 미소가, 눈가에는 눈물이. 가슴은 먹먹해졌다. 늙은 나의 친구들이란 극중 그들의 이야기를 적어낸 소설처럼 나역시 그들의 이야기가 미래의 내 모습인냥 그저 웃으며 지나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내용은 노년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여덟명의 친구들의 살아온 인생이야기, 그리고 함께 살아갈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도 내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친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겨우 27개월된 우리 꼬맹이만 봐도 벌써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배워오는 것들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여기 너무나도 다른 성향을 가진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 음악을 대표하는 두 친구가 있다.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였던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 이자 작곡가였던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는 피아노 음악이 굉장히 주목받던 시절이었는데 피아노의 신이라고 불렸던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연주스타일, 사교적인 성격으로 당시 여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였다.

 그와는 달리 허약한 체질에 섬세하고 예민하며 내성적인 성격의 쇼팽은 대중에게 주목 받지 못했다. 쇼팽의 천재성이 보여질 기회조차 없었던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리스트는 자신의 독주회에서 불을 끄고 그를 대신해 쇼팽을 무대에서 연주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만 귀기울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연주가 끝난후 불이 켜지자 관객들은 열광했다. 오늘날 건반위의 시인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위대한 음악가로 남겨 질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쇼팽을 향한 리스트의 진정한 마음이 기지를 발휘한 일화다. 하지만 모든관계에는 애증이 있기 마련!

 쇼팽과 리스트 역시 라이벌이자 친구인 애증의 관계였다. 아마도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없는 가질 수 없는 다른 부분을 질투했을 것이다. 하지만 쇼팽이 요절하자 리스트는 쇼팽의 전기를 쓰며 그를 예술가로서 그리고 자신의 친구로서 찬사를 보냈다. 동시대에 이 같은 친구이자 라이벌이 있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을까? 어찌됐건 지금까지도 그들의 경쟁구도는 그들의 작품으로 전해져 이어지고 있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꼭 쳐봐야 하는 작품들로 그들의 작품이 꼽히는데 특히 오디션의 레퍼토리를 정할때면 리스트와 쇼팽의 작품을 두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모습은 허다하니 이 사실을 그들이 안다면 얼마나 또 속으로 애가 탈까?

 나도 그런 애증 관계에 있는 친구가 있다. 아직도 대학입시 실기시험장에서 그 친구를 처음 봤던 모습이 생생한데 벌써 16년이 흘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시절 함께 어울리면서 가끔 우린 이런 말을 했었다. 같은 곳으로 유학가서 옆집에 살았음 좋겠다고. 그때는 그런 일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년 후 우리가 정말 같은 곳으로 유학가서 옆집에 살게 됐을땐 얼마나 웃기던지. 우리는 외국에서 피아노듀오 공부를 거의 8년간 함께 했는데 늘 모든 걸 함께 하다보니 정말 많이도 싸웠다.

 피아노 듀오는 피아노 한 대에서 둘이 같이 연주하거나 두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특성상 듀오 전문연주자 과정은 팀을 이뤄 공부하기 때문에 혼자 연습하는 것에 익숙한 피아니스트에게는 힘든 공부임에 틀림없다. 우린 수많은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헤어지지 않고 무사히 졸업했다. 
 너무나 미웠고 너무나 고마웠고 또 너무나 좋았던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없었을 거다.
 쇼팽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Rondo for two pianos in C op.73'를 나의 맞은편 피아노에 앉아, 집중하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리며 연주하던 친구의 모습이, 그 시절 꿈으로 가득찼던 우리의 아름답던 모습이 오늘은 유달리 그리워진다. 다시함께 피아노 듀오 '아인[Ein]'으로 연주하게 될 다가오는 가을을 기대하며. 디어 마이 프렌드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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