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17일 현대차 노사가 올 임금교섭을 시작했을 때다. 몇몇 지인들끼리 '지부가 파업을 할까 안 할까'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다들 나름대로의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한다" "안 한다" "못 한다" "그래도 한다" "할 수가 없다"는 등 갖가지 말들이 오갔다. 그 때 필자는 "설마 그래도"라고 했다.
 확신은 서지 않지만 조심스레 희망을 담은 것이다. 필자 나름대로의 근거는 있었다. 무엇보다 경제사정이 안 좋기 때문이다.(경제가 좋을 땐 파업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경제수도·산업수도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급전직하하는 지역경제 사정을 노조도 모를 리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바람이 얼마나 순진하고 바보스러운 것인가를 현대차지부는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파업 쪽에 발을 담그는 것 같다.
 지난 5일에 있었던 13차 교섭에서 노조는 교섭을 시작하기 바쁘게 '협상결렬'을 선언했다. 이어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잽싸게 움직이고 있다. 하긴 이날 결렬 선언이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는 아니다. 노조는 상견례도 하기 전부터 틈만 나면 "7월 22일 금속노조 총파업에 참여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자신의 숙주격인 회사의 '계속적인 대화' 요청은 묵살하고, 상급단체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대장 역을 올해도 기꺼이 하겠다는 것이다. 혹시 현 지부장이 금속노조 초대위원장이었으니 남다른 '애착'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려 4만8,000 명에 이르는 조합원의 수장은 개인의 애증(愛憎)으로 갈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혼자서 "노!"를 외칠 만큼 강단도 있어야 한다. 비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알파고 같은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전쟁의 성전으로 불리는 '손자병법'에도 상대를 선제공격하려면 세 배 이상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파업은 공격이고, 노·사간 전쟁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겨도 골병, 져도 골병이 든다는 것이다. 후유증은 고스란히 노사가 함께 떠안아야 한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딱 적용되는 게 노사분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원래 도요타(豊田)는 닛산(日産)에 이은 일본 2위 업체였다. 그러나 지난 60년대에 있었던 닛산의 장기 노사분규로 자리바꿈을 한 뒤 아직까지 뒤집히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해 현대차노조의 파업은 '있는 집 아이의 투정'이나 다름없다. 임금에서 복지, 심지어 명함 한 장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이 나라 상당수 근로자의 로망이다. "어디에 가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현대차 직원의 행동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부러움, 질투, 비아냥과 비난이 뒤섞인 말이다. 새겨들을 말이다. '현대차'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 현대차지부의 요구사항 하나하는 일반기업 근로자들에겐 꿈 같은 내용들이다. 어디에서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해마다 새롭게 들고 나오는 요구내용들을 보면서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도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각오하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데 혹시 알지 모르겠다. 노조의 으름장에 가장 놀라는 쪽은 사측보다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바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다. 현대차 노조가 협상결렬을 선언하자 그들 입에서는 "올해도 또 죽었네"라는 탄식과 원망이 절로 나온다. 여기에 지역상인들의 실망과 원성도 만만찮다. 믿기지 않으면 가까운 시장이나 상가, 아니면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면 된다.

 테슬라 무인자동차가 첫 사망사고를 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첨단 장치들로 만들어진 무인차였지만 흰색과 하늘을 구분하지 못해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의 상황은 자동차 운행조건 보다 훨씬 복잡하다. 브렉시트 결정 하나가 세계경제를 출렁이게 했다. 서로 물고 물리며 돌아가는 세상에 자칫 방심하면 영원한 낙오자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협상결렬이 반드시 파업으로 가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현대차지부가 7월 22일 총파업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수순으로 치닫는다면 '앞뒤도 재어보지 않은 천둥벌거숭이 노조'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지부는 현대자동차라는 회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순서와 경중(輕重)을 따져봐야 한다.
 비록 결렬은 선언했지만 대화의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줘서는 안 된다. 현대차 성장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 고객과 협력업체에게 불편과 고통을 안기는 것은 또 다른 죄악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