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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명(黑鳴)
                                                                 고재종

보길도 예송리 해안의 돌들은요
무엇이 그리 반짝일 게 많아서
별빛 푸른 알알에 씻고 씻는가 했더니
소금기, 소금기, 소금기의
파도에 휩쓸리면 까맣게 반짝이면서
차르륵 차르륵 울어서 흑명,
흑명석이라고 불린다네요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뿐이라던
뮈세여, 알프레드 뒤 뮈세여

● 고재종 시인 - 1984년 실천문학사 시 '동구 밖 집 열두 식구' 발표. 2001 제16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2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 류윤모 시인
'앞산에 안개 것고/ 뒷메에 해 비친다./ 배 띠워라 배 띠워라'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 첫 구절입니다.
 51세의 혈기방장하던 고산은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청의 누루하치에게 삼배구고두례(세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 것)로 무릎을 꿇었다는 삼전도의 치욕을 전해 듣고 울분에 차서 아예 세상을 등지고 살기로 작정합니다. 제주로 향하다가 거센 풍랑에 배를 돌려 잠시 댄 곳이 이 곳 보길도. 보길도의 빼어난 풍광에 매료된 그는 세연정을 짓고 은거하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시편들을 줄줄이 쏟아냅니다. 백학처럼 보길도 해안을 유유자적 거닐며 영감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
 황금찬 시인이 서러운 흑인 수난사를 공감하며 '이 강의 깊이를 누가 알랴.'라는 흑인 영가(깊은 강)를 속울음으로 써내려 갔듯. 고재종 시인 또한 해안의 몽돌을 보며 검은 울음을 우는 흑명을 떠올리게 되었겠지요.
 영감을 주는 물건이나 사람, 장소 그 외 여러가지를 뜻하는게 뮤즈지만 예술가뿐만 아니라 지구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뮤즈라는 것.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는 만나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끼치며 때론 사랑하고 상처를 받고 그로인해 한층 성숙해지는 일생을 살아갑니다
 소설가 조르주 상드는 일생을 세간의 스캔들 속에 살았습니다 .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불꽃같은 그녀의 인생 명제였습니다.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와 쇼팽 등 그녀에게 자유분방한 사랑은 창작의 뮤즈였고 샘솟는 예술혼의 원천이었습니다.
 너무 먼 사람이 의외로 가까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밀고 당기는 구심력에 의해 관계를 맺고 원심력에 의해 멀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곳 보길도 해안에 와서 반짝이며 파도에 휩쓸리는 몽돌을 뮤즈 삼아 흑명이라는 귀한 시를 얻었습니다. 보길도 해안이 생생하게 바로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듯 합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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