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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울산예총 사무처장

산딸기를 올해처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없다. 산딸기가 제철인 오월 초순부터 유월 중순 끝물 때까지 매장 치듯 새벽시장과 대형할인점을 찾아다니며 산딸기 바구니를 사다놓고 보약 먹듯 즐겼다. 때로는 산딸기를 바구니 채 들고 운동장을 걸으며 먹어대면 사람들은 곁눈질로 힐끗힐끗하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러던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올 여름은 산딸기와의 밀담으로 행복했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산골 촌놈이다. 그래서 지금도 시장에 나가면 농산물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감자나 고구마를 우습게보기도 하고 고추와 가지를 돈 주고 사먹는 것에 대해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어릴 적 텃밭에 지천인 가지·오이를 돈 주고 구입하는 아내가 못마땅했다. 늘 고향텃밭에 가면 지천인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산딸기도 돈 주고 사먹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장에 가서도 바구니에 담겨져 있는 산딸기를 먹고 싶기는 한데 고향 앞산에 가면 산 전체가 야생 산딸기 밭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 산딸기 바구니를 들다가도 슬그머니 놓고 지나치게 됐다.

 그랬던 나였는데 올해는 우연히 산딸기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오월 초순께 주말 학성동 새벽시장에 갔더니 탐스럽게 익은 산딸기를 두 바구니에 만 원이라고 했다. 아마 어제 팔지 못한 재고상품을 땡 처리하는 것이었다. 싼 맛에 귀가 솔깃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정거리는데 상인이 "싸줄 때 가져가면 무조건 이득"이라며 싸서 포장까지 해주는 바람에 무장해제 당하듯 돈을 내주고 말았다.

 어설프게 샀지만 딸기는 재고상품 답지 않게 돌기가 살아있는 게 여간 싱싱하지가 않았다. 집까지 참지 못하고 차안에서 한두 개 먹어보는데 어릴 적 이슬 머금은 산딸기를 따먹었을 때의 그 맛이 되살아났다. 딸기 바구니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집까지 오는 중에 한 바구니의 절반을 먹어버렸다. 산딸기 맛에 완전 취한 날이었다.

 그 이튿날 저녁은 걷는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집 근처 대형 마트까지 갔다. 내심 산딸기를 찾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아내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둘러보던 중에 마이크 소리가 귀를 홀렸다. "싱싱한 산청 지리산 산딸기를 절반 가격에 30분간만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듯 발걸음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빨라졌다.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딸기 상자를 들고 나가는 중이었다. 엉겁결에 또 두 상자를 챙겼다. 흡족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갑자기 산딸기에 중독된 것 같았다. 집에 까지 오는 중에 동천강 다리가 있다. 다리 위를 걷다가 생각해낸 것이 한걸음 옮길 때마다 산딸기 한 알을 먹는 것이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연신 딸기가 농구 골대 속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듯 입안으로 들어갔다. 토실한 놈은 공중에 던져서 입으로 받아먹다가 자빠질 뻔도 했다.

 싱싱한 산딸기는 입안에서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먼저 입안에 딸기를 넣어 혀로 굴려서 자세를 잡은 후 딸기 꼭지 속으로 혀를 밀어 넣어 보면 솜털 같은 돌기들이 감지가 된다. 그렇게 돌기들을 헤치고 난 후 흩어진 알맹이를 하나하나 터뜨려서 맛을 보면 새콤한 밑 맛이 깔리고 그 위에 달콤함이 포개진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딸기를 먹다보면 동천강 다리를 건너기 전에 벌써 상자의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산딸기 사냥이 내내 이어졌다. 그러다가 요 며칠 바쁜 일이 있어서 좋아하던 산딸기를 잠시 잊었다.

 산딸기 생각이 나서 어제 저녁에는 일부러 대형마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과일 매대로 가서 빛의 속도로 산딸기를 찾았다. 산딸기는 흔적을 감추었다. 그 자리에는 방울토마토가 자리를 잡았다. 이미 산딸기는 제철이 끝났던 것이다. 혹시 오디라도 있는지 살폈지만 오디의 계절도 끝나 버렸다.

 올 한해 산딸기와 보낸 잠시 잠깐의 시간은 활력을 주는 즐거움이었다. 산딸기는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는다'고 하는 동요처럼 그만큼 순진하고 수줍고 부끄러움이 많다.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흔한 것이 산딸기다. 생명력도 강해서 몇 뿌리만 심어도 몇 해 지나면 주변으로 크게 번진다. 어릴 적에는 산길 언저리에서 농익어서 붉다 못해 까매진 산딸기를 따 먹으려다 가시에 긁히기도 했다. 그 상처들은 산딸기가 져버리고도 난 한참 후에야 아물었다. 겁이 많은 여학생들은 머슴애들이 따주는 산딸기를 자꾸만 요구했다. 눈에 아른거리는 그 친구들이 근래 마산 친구 잔치 집에서 만났다. 한 순배 술잔이 돌고 산딸기 이야기를 끄집어냈더니 모두들 추억 속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산딸기의 옛 맛을 찾았다는 것은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산딸기 맛은 삶의 작은 행복이 됐다. 나는 아예 내년 봄 산딸기나무를 고향 밭둑에 심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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