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정교(月精橋)의 밤
                                              박정옥
모를 일이다.
이곳에 서면 왜 이렇게 그리움이 마을의 불빛처럼 하나 둘씩 돋아나는지 골목길 들어서면 돌담의 적막이 별의 그물을 끄을며 앞서는지 잠시 문설주에 기대어 섰나. 몇 백 년 굽은 소나무 한 척의 커다란 범선, 추억으로 궁 밖을 서성이고 내 몸에선 말굽 소리 아직도 낭산 길인데 남천 물소리 반월성을 떠밀고 가네.

당신이 있는 곳에 길이 생겨나고 당신의 등이 외롭고 넓어서 당신의 운명이 읽히고 그 길을 따라 지나간 당신의 상처를 보고 있으니 당신이 마주한 이상이며 꿈들이 아직 읽히지 못하고 여기 뒹굴고 있네. 천년이면 그리움도 부러지는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저 밤의 울음들 당신의 슬픔에 잠겨있는 만월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반월성을 지척에 두고 문천에 잠들지 못한 기다란 꿈이 끙! 돌아눕는 것을 보네.

박정옥 시인- 경남 거제 출생, 2011년 ,<애지>로 등단, 시집으로 '거대한 울음'.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석사과정 수료 .   프리랜서.

무릇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했던가. 경주의 밤은 무수한 서사를 내포하고 있다. 경주를 제대로 읽으려면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스캔을 떠  봐야 한다.  고도 경주를 한 바퀴 둘러보는 '달빛 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선화공주와 백제 서동왕자의 사랑. 말의 목을 쳐서 스스로 발길 끊고자 했던 천관녀를 찾아가던 김유신의 그 것. 원효를 사모했던 요석 공주 등 신분과 귀천을 넘어서는 거개의 사랑이 다들 두근거리는 밤에 이루어 졌으리. 선덕여왕을 사모했던  지귀도 얼마나 많은  밤을  쥐어뜯으며 금환식을 했을까.
 고도 경주의 행간을 찬찬히 달빛에 비춰보면 수많은 석탑과 황룡사 불국사 등 불국정토를 꿈꾸던 사찰들과 찬란했던 왕조의 흔적들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체온 한 점 붙지 않는 그 목석의 하드웨어 위에서 꽃이 피고지고 피고지듯 궁궐을 중심으로 펼쳐졌을 애욕과 생멸의 인간사가 소프트웨어로 남천 물소리를 뒤흔들며  낙화처럼 분분히 흩어지고  흘러갔으리.
 국경조차 없다 했던가,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모습의 선남선녀 간 상열지사가 신라 천년의 역사 위에 려려한 금박을 입혀 냈으리.
 고도 경주에 가면 구불구불 솔숲에 내리는 달빛의 신화와 장옷을 둘러쓴 부용꽃 같은 여인들의 탑돌이 비원과 귀 기울이면 거대 왕릉 군을 집적해낸 민초들의 실낱같은 신음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잡아 낼 수가 있을 터.
 월정교라는 시간·공간적 설정 위에 스토리를 입혀낸 시인의 '월정교의 밤'. 여성성의 그리움으로 빙의해낸, 스스로 길이 되어 뚜벅뚜벅 열어가는 외롭고 넓은 등의 남자( 고독한 결단의 야망과 포부가 큰)의 운명(김유

신? 김춘추?)은 칼로 흥하고 칼로 망하는 길이 늘 예비 되어 있듯…
 그가 속울음으로 우러렀을 미완의 위업과 이상(만월)이 토막 난 녹슨 칼(반월)처럼 부러져 경주박물관 한구석에 남았을 터. 끙 돌아눕는 그의 불면을 말없이 바라보았을 여인의 안타까움도 남천 물소리를 따라 흘러갔으리. 휘영청 달밤, 수류화개의 남천 물소리를 따라 너도 가고 나도 간다. 세월도 간다. 반월성을 한 바퀴 휘돌아 남천 물소리에 기대서서 시 한줄 곱씹어 보는 고즈넉한 일정을 세워보는 것도 다가올 불볕더위를 피하는 망중한의 피서로서 정서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      류윤모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