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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우연히 공돈을 번 농부는 삽질이 싫어진다. 중국 송(宋)나라 때 이야기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던 농부는 어느날 토끼 한 마리가 자신의 밭에서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는 것을 목격했다. 농부는 토끼가 또 그렇게 달려와서 죽을 줄 알고 밭 갈던 쟁기를 집어던지고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수주대토다. 아무리 기다려도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 일상, 변화하지 않는 조직, 변화가 두려운 리더를 향해 곧잘 사용하는 사자성어다.

 현대자동차에 이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결국 파업을 선택했다. 노조는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와 함께 오는 20일 총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대차 노조와도 23년만에 '연대파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이다.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 3년 동안 노조는 연속으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이러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행보를 보는 세간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파업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일련의 경영개선계획은 회사의 '수주 절벽'에 따른 실적 악화 탓도 있겠지만, 정부와 채권단의 과도한 요구에 기인한 측면이 더 크다. 오죽하면 회사도 '부채비율 134%대의 정상 기업에 RG 발급조차 늦추느냐'며 부실기업 취급하는 금융권에 읍소(泣訴)까지 하겠는가.

 더욱이 조선 산업이 처한 경영환경은 '시계(視界)제로'다. 올 상반기 전 세계 상선 발주량은 전년 대비 30% 수준인데, 국내 조선업체 수주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무려 88%나 줄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들어 고작 7척을 수주하는데 그쳐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64척 수주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2020년까지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수주잔량이 110여척으로 줄어 내년부터 해양 H도크를 시작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도크를 비워야 하는 실정이다. 동시에 지난 2년간 무려 5조 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9월 이후 보유주식과 자산을 매각해 3조 9,000억 원의 현금유동성을 확보했지만, 시황이 호전되지 않아 다시 주채권은행에 3조 5,000억 원을 추가로 마련하겠다는 자구안을 내놓고 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 입장에선 그동안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라 하니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난 10여년간의 영업이익으로 5조 손실은 감당이 가능하다'는 둥 '오일뱅크를 매각해 현금화하자'는 등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회사가 수 차례 해명해도 들으려고 조차 않는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부는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에서 조선 '빅3' 원청만 제외했고, 채권단은 경영개선계획의 성실한 이행을 독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작금의 냉정한 현실이다. 안그래도 최저치로 떨어진 용선료와 선가(船價)로 인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주사에게 노조의 파업은 인도 연기나 계약 취소 명분만 하나 더 늘려줄 수 있다.

 이런데도 현대중 노동조합은 비핵심자산 매각, 고정연장 폐지, 분사, 희망퇴직, 성과연봉제 등 회사의 자구노력에 반대하고 있다. 업계 최고 연봉과 복지라는 기득권 고수와 명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경영 환경의 급변에 아랑곳 하지 않고, 끝내 파업에 돌입한다면 '배부른 귀족 노조'라는 국민적 비아냥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2009년~2010년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회사의 구조 조정에 맞선 노동조합과의 갈등에 이은 극심한 혼란은 회사를 폐업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회사를 정상화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킨 건 결국 파업이나 시위가 아니라 오직 노사화합을 통한 경영실적 회복뿐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들 회사는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현대중공업 노조의 선택은 자명(自明)하다.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모두에게 파국과 공멸을 부를 뿐이다. 해외고객, 채권은행, 정부가 현대중공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굳이 항의하려면 그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정상 기업을 비정상회사로 취급한 주채권은행 등 금융권과 정부다. 그럴 생각이 없으면 회사의 경영개선계획에 적극 힘을 보태는 것만이 고용안정의 지름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파업이나 외부의 도움으로 경영 위기를 극복했다는 소리를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기에 하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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