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력은 달콤하다. 백주부의 말 대로 달달함은 모든 미각을 마비시킨다. 달달함에 취해 레시피를 잊고 마구 설탕을 넣다보면 당분의 풍미는 사라지고 혈관까지 채운 달콤함이 육신을 녹여버린다. 하지만 달달함은 과유불급의 레시피만 지키면 말 그대로 달달하다. 그래서인가,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설탕은 식품이 아니라 소화 촉진을 위한 약품"이라고 극찬했다.
 진(秦) 시절, 시황제를 섬기던 환관 조고 이야기다.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리고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웠다. 황제의 권력을 대신 가진 환관은 눈이 뒤집힌다. 뒤집힌 눈에 의심이 들면 모든 관료가 적으로 보이는 법, 그래서 조고는 술책을 부렸다.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허수아비 왕 호해에게 말했다. "폐하, 저것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폐하를 위해 구했습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호해라도 사슴과 말은 구분할 줄 알았다. "승상은 농담도 심하시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지록위마)' 무슨 소리요?" 호해의 말에 힘이 난 조고는 관료들을 향해 외친다. "이것이 사슴이요, 말이요?" 난감하지만 조고가 두려운 이들은 '말'이라고 고개를 숙이고 그래도 혈기 왕성한 이들은 '아니지, 사슴이야' 라고 바로 잡는다. 하지만 사슴이라고 바로 잡아 준 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바로 그 조고의 횡포에서 나온 이야기가 지록위마다.
 권력의 단맛을 본 자는 고기 맛을 본 중의 혀끝만큼 군침 조절능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위치와 직분, 감당할 지분의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자가 권력의 도포에 몸을 감싸면 세상은 어지럽다. 지록위마다. 단맛은 미각만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마비시키고 결국 이성을 당분으로 물들게 한다. 사슴을 말이라 칭하는 지록위마는 애교 수준이다. 벤츠는 선물이고 부동산은 포장지 정도라는 한국의 노블리스 계층 문화는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변신의 귀재라야 입성 가능한 수준이다.
 말이 나온 김에 잘나가던 진경준과 잘나갔던 김정주, 여전히 잘 나갈 것 같은 우병우 이야기를 해보자. 진경준. 몰락한 엘리트라고 이야기 하지만 50대 문턱에 선 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몰락했다고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기회가 많다. 물고 물린 지록위마 사회는 끼리끼리 문화권에 들면 기회라는 승강기를 간식처럼 제공해 준다. 그 잘나가던 진경준의 50년 남짓한 삶이 놀랍다. 대학시절 양대 고시를 패스하고 하버드에서 공부하다 법학박사까지 파고든 열정은 엘리트의 교감이 될 법하다. 더구나 그는 열혈검사 시절 6,000원에 기차표를 산 사람이 1만원에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것을 암표로 적발, 4,000원의 부당 이득에 대해 '구속 기소'를 후리친 정의의 사도였다. 금액의 크기보다 귀향객의 심리를 이용한 죄의 무게가 중요하다는 그의 당시 인터뷰는 순수의 시대, 맑은 눈빛의 그가 존재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병우, 솔직히 금수저가 판을 치는 세상에 청와대 민정수석인 그는 보기 드문 흙수저다. 경북 봉화의 교사집안에서 자란 그가 출세를 위해 오로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파고드는 일이었을 법하다. 시골 출신으로 흙수저의 삶을 산 그가 지난 2014년 행정부 공직자 재산 1위에 랭킹을 올린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개인적 재테크의 히스토리를 모르는 상황에서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처가 부동산 문제나 아들의 병역 특혜, 부동산 차명 취득이나 탈세 의혹 등은 지금까지 제기된 그에 대한 소문의 일부다. 문제는 진경준과 김정주 등 일련의 사건에 그가 꽤 깊숙이 관여했다는 설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정수석의 영향력은 무소불위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신임이 확고하다면 지록위마를 테스트 교본으로 삼았던 조고급은 될 법하다. 바로 그런 자리에 말 많은 그가 있으니 민심은 위태롭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인사는 불편함을 넘어 조롱거리가 됐다. 스스로 물러남을 모르는 자들이 '브론즈 마스크'에 말 그림을 그리고 돌아다닌다. 
 좀 지난 일이지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에 올랐던 홍기택이라는 인물은 압권이다. 깜냥도 안되는 인사에게 직책을 덜컥 쥐어주자 감당 할 수 없는 자리의 무게에 눌려 스스로 잠적하는 촌극으로 돌아왔다. 국제적 망신이 어디 이 뿐이랴만 참 낯 뜨거운 일이 돼 버렸다.
 지난 주말에는 '너는 누구인가' 한마디에 속세를 떠나 한국으로 왔던 하버드 대학원 출신 미국인 현각 스님 이야기가 또 뒤통수를 후리쳤다. 그는 한국 불교가 깨달음 대신 재복의 발원에 혈안이 됐다며 침을 뱉았다. 현각의 말대로 외국 스님들을 장식용 들러리로 여기는 것이 한국 불교의 실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의 체화된 언어는 모멸감이었던 모양이다.
 울산에서 십리대숲을 돌아 대왕암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끝내고 업무를 재개했다. 지금 관심사는 사드도 북한 미사일도, 개헌도 아니다. 환관정치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정부는 불행하다. 우병우를 감싸면 또다른 우병우가 길을 찾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선택이 십리대숲 대나무 품새처럼 분명하고 곧게 잘라내 주길 민심은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