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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배 생각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디?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안상학 시인 - 1962년 6월 5일(만 54세), 경북 안동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1987年 11月의 新川' 등단.
 



▲ 류윤모 시인
이 시를 읽어보면 시인보다 오히려 아버지가 천생天生 시인. 안상학 시인은 아버지의 시를 노트에 옮겨 적었을 뿐. 아배가 아직도 생존해 계시다면 부자간에 시비라도 일 대목. 깔끔한 업어치기 한판승처럼 군더더기 없이 후련하다. 시인은 이런 전복적 사고가 기본. 세상의 모든 틀에 박힌 고정된 관념적 시각으로 본다면 시는 단 한 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시가 뭐 별건가. 미사여구를 골라 짜 맞추고 요리조리 꿰맞추는 작위는 벌 나비도 오지 않는, 향기라곤 짜들어 약에 쓸래도 없는 조화 같은 시.
 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제법 그럴싸 해보이기도 하는. 이렇게 사고를 180도 뒤집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면 그게 바로 시. 사실 시는 별 것도 아니지만 별 것. 시시해서 시. 거룩할 것이 서 푼 어치도 없는 것. 윤동주 시인이 별을 노래했지만 시가 지상으로 내려온지 이미 오래. 경상도 어디쯤 시인의 곡절 많은 성장기가 있었던 듯. 그 지역 아버지들의 통칭이 아배. 턱밑으로 1보 전진하기도 겁나던 위풍당당 아배도 있었지만 아들을 상대로 얼굴색 하나 변치 않고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즐기는 희한한 아배도 있었던 듯.
 부자간에 이런 객쩍은 농담을 즐길 정도라면 당시로선 매우 드문 현상, 대단히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뭔가를 햇살처럼 베푸는 아비다. 박목월 시인의 '이별가'라는 시를 재생해보자.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중략)오냐. 오냐. 오냐./ 아니믄 저승에서라도…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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