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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학교에 나와 한 학기를 돌아본다.
 교감이라는 자리가 원래 학교의 전체 교육과정 운영에서부터 복도의 신발장 청소까지 구석구석 손 안 가는 곳이 없어 정신없이 지내온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2학년들과 함께 한 수학여행이다.

 너무도 오랜만에 가보는 수학여행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이번 학년은 개구쟁이가 많다는 선생님들의 걱정과 학년 초 크고 작은 사고를 도맡아 치던 학년이라 인솔을 책임진 입장에서 조금은 긴장되기도 했던 터였다.
 역사기행과 지리기행이라는 두 개의 테마로 나누어 전라북도 임실, 전주, 고창 등을 다녀왔다.
 아이들도 교복을 벗고 학교를 떠나왔다는 들뜸과 설렘으로 약간의 일탈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첫날의 여정이 끝나고 둘째 날 119 안전테마파크에서 남학생 한 녀석이 담배를 가지고 있다가 선생님에게 발각이 되었다.
 조사를 해 보니 담배를 가지고 온 아이가 둘 더 있었다.
 그날 저녁은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장기자랑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친구들이 노래와 춤과 림보와 비트박스 등 갖가지 장기를 선보이며 즐거워할 때, 그 세 녀석은 강당 밖에서 풀 죽은 모습으로 선생님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고, 문밖으로 들려오는 친구들의 환호와 박수소리를 뒤로 한 채 반성문을 써야 했다.
 마지막 날 아침 이른 조반을 먹고 우리는 아이들을 숙소 뒷산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으로 데리고 가 한 시간 반쯤 함께 산길을 걸었다.

 아이들은 힘들다고 칭얼대면서도 제법 잘 걸어주었다.
 어제 혼이 났던 아이들도 산길을 즐겁게 걸었다.
 시원스레 뻗은 편백 숲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다 보니 진입로 부분은 편백을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나무들이 볼품이 없고 줄기가 굽은 것이 많았다. 그걸 본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이 나무들은 병든 거 같아요, 나무가 구부정하고 잎도 별로 없어요." 하자 길을 안내했던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해 준다.

 이 나무들은 아직 어려서 줄기가 굽어 있지만, 더 자라면 희한하게 쭉 곧은 나무로 자란다고.
 그 순간 번뜩 드는 생각, "그래 우리 아이들도 조금만 기다려주면 이 나무들처럼 곧게 자랄텐데, 지금 잠시 마음이 아파 방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너무 조급하게 아이들을 다루는 건 아닐까?"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세 녀석은 교칙에 따라 징계를 받았다.
 흡연이야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니 당연히 금지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생활지도와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너무 틀 속에 가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의 자잘한 일탈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은 너그럽게 넘겨도 되지 않을까?
 필자는 아이들이 바지통을 줄여서 입거나 입술에 틴트를 바르는 것보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침을 뱉는 것을 더 엄격하게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교실에서 교사의 교육적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는 엄격하게 지도해야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으로 볼 수도 있는 행동은 좀 풀어주어야 아이들도 학교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헤매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닦달하기보다는 편백나무가 자라기를 기다리듯이 좀 기다려 주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세상 변하는 속도가 빠른 요즘 기성세대인 교사의 생각이 변해야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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