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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아랍의 속담이지만 독일 영화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6~1982)의 영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4년 발표된 이 영화는 당시 폐쇄적인 서독의 사회적 편견에 따른 사회구성원의 불안에 관해 이야기 한다.
 청소부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60대의 독일 여성 엠미는 어느 날 비를 피해 아랍인들의 카페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젊은 모로코 노동자 알리를 만난다.

 알리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화가 난 한 여자가 엠미와 춤을 춰보라는 짓궂은 주문을 하고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그들은 가족과 직장, 이웃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히틀러의 단골 음식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주위의 불편한 시선, 젊은 남편에 대한 질투, 자식과의 갈등 등 내부에서 발생한 불안은 그들을 더욱 치명적으로 잠식해 들어간다.
 최근 울산시민은 지진, 악취, 석유화학공단의 폭발사고, 발전소의 유해물질 무단 방류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으로 지진에 안전하다고 굳게 믿었던 시민들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이 생겼다.

 여기에 부산과 울산에 잇따른 악취 문제가 겹쳤다. 관계 당국이 원인을 찾지 못하는 사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석유화학 공단에서 가스가 누출됐다' 등 그럴듯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또 정기행사처럼 석유화학공단 내 효성 용연3공장에서 삼불화질소(NF3) 제조공정 가스배관 폭발사고까지 발생했다.
 불안의 마지막은 울산화력과 원전 등 전국에서 수천억t을 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화학물질 디메틸폴리실록산이 장식했다.
 문제는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관계 기관의 안일한 대처다.
 지진 발생 후 국민안전처의 뒤늦은 긴급재난문자 발송뿐 아니라 울산시의 대처도 미흡했다.
 악취도 공단에서 발생한 아황산가스 등이 원인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배출한 업체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바다에 유해화학물질을 무단 배출 했음에도 정부 부처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발전소는 변명하기 바쁘다. 폭발사고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이 되풀이 될 것이다.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은 '불신'이다.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고 두루뭉술하게 지나가면 시민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알리가 위궤양으로 쓰러진다. 행복한 미래가 계속될 것처럼 엠미는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위궤양은 스트레스로 인해 재발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로 이들의 불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감독 파스빈더가 원하는 사회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나 결말을 보면 그도 사회와 사회구성원 내면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불신의 사전적인 말은 '믿지 아니함. 또는 믿지 못함'이다. 그 반대말은 믿음이라는 것을 정부와 지자체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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