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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도시가 녹아내릴 것 같은 삼복염천에 하루 종일 시달리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가 빠지고 날카로워진다. 해마다 여름나기가 더 힘겹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이 솟는 머리를 식히려고 건물 밖으로 나가본다. 용광로가 따로 없다. 가림막도 시원찮은 노점에서 오후 두 시의 잔인한 자외선에 맞서는 노점상들을 본다.

 가끔 경험하는 일이지만 내가 가장 버겁다고 여기는 일이 나만의 생각일 때가 있다. 오늘도 나보다 더 덥고 힘든 사람들이 말없이 문밖에서 그들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는 초복과 중복 사이의 기온이 유난스럽다. 거기에다 벌써 보름 넘게 가뭄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맥이 빠진다. 오후 내내 앉아서 '알 수 없는 대상'을 들여다본다. 그 대상이 '갑'이려니 하고 들여다보면 '을'이다가 다시 '갑'이다. 양성 한몸이듯 모두가 잠재적 갑과 을인 무리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겉도는 물건이 나인 것 같다. 더위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것인가. 내가 그 속에 있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어 마치 아큐(중국 작가 루쉰의 중편소설 '아큐정전'의 중심 인물)가 된 듯하다.

 혼자 발끈하는데 툭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 내가 아큐보다 나은 것이 있기는 한가. "내가 바로 그 녀석이 맞네"라며 혼자 구시렁거린다. 오후 내내 덥고 우울했다. 나를 뜯어놓고 이리저리 들여다보니 볼수록 어수룩하고 부실해 이런 모습으로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대견하기조차 하다. 사는 모습이 분답하기만 했지 속이 실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용기도 그다지 없었다. 꿈을 꾸듯 용만 쓰다 늘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되고 말지 않았던가.

 실한 삶이란 살이 중에 모름지기 남의 고통과 슬픔도 함께 헤아리고 나누려는 노력이 따르는 것을 두고 이르는 것이 아닐까.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잘한 궁리만 늘어가는 최근의 내 모습에 주눅이 든다.

 불경기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구조 조정이다. 자영업자는 대기업과 달리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소리 없이 구조 조정이 이뤄진다. 내 주변에도 몇 해 전부터 시나브로 문을 닫는 가게들이 생기더니 이제는 아예 드러내놓고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알량한 몇 마디로 떠들어 댈 일이 아님을 알아차리고부터는 말수는 줄고 눈치만 늘고 있다.

 며칠 전에도 스무 해 동안 지키고 있던 이웃의 사업장이 조건이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새물이 되어 그 자리를 메운 사람의 입장에선 축하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밀려나가는 이웃에게 생존의 문제가 엮여 있으니 어느 쪽에게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됐다.

 도움이 절실한 쪽에서는 작은 관심이라도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런 일을 하는 데 갈수록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 때로는 자괴감과 안타까움이 묶음으로 밀려와 풀이 죽기까지 했다. 누구의 어려움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함께하고 나누려 애쓰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더위와 추위는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강도가 다른가 보다. 이웃은 올여름이 유난히 더워 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줄어든 것 같아 덥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르는 속성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천근만근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가늠할 길 없는 이 무게를 두고 웃었던 적이 있다. 오늘 퇴근길의 내 마음의 무게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집에 들어서니 정원의 식구들도 목이 말라 물을 기다리고 있다. 선걸음에 물 분사기를 들고 허기진 녀석들의 배를 불린다. 바삭 마른 땅에 떨어진 물은 금방 데워져 온천수가 솟듯 한참동안 튀어 오르더니 점차 열기는 잦아들고 시원해진 정원은 춤을 추듯 활기가 넘친다.

 다시 기운을 차린 나무와 화초들의 표정이 환하다.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굳었던 얼굴이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한 모금의 물로 갈증을 풀어준 것에 대한 초목의 답례를 마주하니 아랫마을에서 핀 열꽃도 사그라들고 팽팽했던 신경도 느슨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일임을 깨닫는다.

 지금 상황에서 걸어나갈 출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부드럽고 편한 얼굴로 이웃을 대하는 일이다. 이 또한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방법일 수 있다. 내 입장에만 매몰돼 마른자리만 골라 발을 옮기듯 그들의 눈길을 피하려는 심리가 어색한 표정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스무 해 넘게 그들을 봐 오지 않았던가. 성실하고 정성스러운 노력을 하면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위와 이웃의 어려움으로 엮인 원통 안에서 한동안 길을 찾지 못해 막막했다. 늘 문제의 답은 단순하다. 그렇지만 그곳에 이르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토네이도를 탈출할 수 있는 열쇠는 환한 얼굴인 화안시(和顔施)일 것 같다. 실하지 못한 내가 그런 열쇠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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