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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귀스트 로댕, 지옥문, 청동, 550×703×746(h)cm, 1880~1917.

'지옥문'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이 1878년 '청동시대'를 프랑스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입선도 못했다. 이유는 남성인체가 너무나 사실적이라는 것이었다. 인체를 석고로 떠서 만들었다는 의혹과 비난을 받았을 정도로 이전의 조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 왜 젊은 남성의 몸을 똑같이 조각했는데 낙방했을까?

 사실, 조각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인간의 몸을 표현하는 예술이 아니었다. 조각은 신을 위한 그리고 신을 표현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신의 모습을 만들어야 했다. 8등신인 밀로의 비너스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신의 몸이다. 해부학적으로 존재자체가 불가능한 인체의 비례가 8등신이다. 수백 년을 지나 다시 르네상스시대에 이상적인 인체비례미를 추구했다.  그 증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드로잉 작품인 '비트루비우스의 인간'이다. 미켈란젤로도 신의 몸을 조각했다. 적어도 18세기 이전까지 조각이나 그림은 사실적인 몸을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고, 신을 위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이 상식인 시대에 로댕이 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 조각을 출품했으니 손가락질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것도 완전히 벗은 젊은 남성을 조각했으니 당시 눈으로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2년 뒤, 낙방한 그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가 사들였다.

 '지옥문'은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880년 프랑스 '조형예술국'으로부터 이 조각을 의뢰받았지만, 1917년에서야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주조되었다. 지금까지 7개가 제작되었고 그중에 한 개가 삼성미술관에 있다. 로댕은 거의 30년 이상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 매달렸다. 고치고 또 고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만든 작품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본다. 그리곤 마치 다 알았다는 듯이 우쭐거리기도 한다.

 청년시대와 달리 지옥문조각은 애매모호하다. 바탕과 사물의 경계가 불명확하다. 이런 로댕의 조각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근대사회의 혼돈과 변화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고, 예술에 대한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한가지, 지옥문 꼭대기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어서 지옥에 갈 걱정보다 지금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낫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지나치게 교조주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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