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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문송산

그대 그리운 날에는
비가 옵니다
 
비 내리는 거리마다
빗방울 떨어져
동그라미 그렸다가
다시 또 지우는
이 마음을
그대 진정 아실런지요
 
수 만개 실반지 만들었다 부수는
이 심정 진정 그대는 아실런지요
 
비 오는 날이면
그대 빗방울 되어
내 가슴 아프게눈물로 적십니다

문송산 시인 : '시문학' 추천완료(1983년 문덕수 추천), 부산여대 교수 퇴임. 울산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울산지역위원회장 역임. 현 울산시인협회장. 시집 '보이는 것은 모두 젖는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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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윤모 시인
김종삼의 장편 이후 이토록 서럽고 뼈저리게 가난을 꿰 뚫어낸 시편이 흔치는 않다.
 신경림의 '못난 것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 철지난 옷을 입고…'의 '농무'는 70년대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는 리얼하다고 할 수 있으나 오늘날은 도농 간에 철지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찾아 볼 길이 없다. 시대가 달라져 시의 생명력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 브랜드 의류건 중국산이건 마트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물자가 차고 넘치는 세상. 이제 가난의 개념 자체가 달라져 버린 것. 하지만 시인의 시는 결혼제도가 영속하는 한 다시 읽혀도 흠결이 없다. 감정이입한 시인은 빗방울 떨어지는 형상을 보며 실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한 자책을 하고 있는 것.
 동그란 파문들을 읽으며 온 세상 천지가 실반지로 가득한… 이런 뼈저린 사연인들 왜 없었을까. 시는 '가슴으로 써라. 뼈 속까지 내려가 써라'의 모법답안인 것. 시인은 사실 그만큼은 가난해 본적이 없었을테니 아마 객관적 체험을 주관화했을 것이다. 6·70년대 애송이 초등교사로 밀양에서 봉직한 문 시인으로서는 아마도 가난으로 결혼 못한 안타까운 제자의 속내를 읽어낸 시일수도 있겠다. 전이된 슬픔이 대곡하듯 비로 내리고. 약속의 상징인 반지를 끼워주지 못하는. 수없이 만들었다 부수는 것이나, 눈물로 적시는 것은 언약의 실기를 의미한다. 오늘날 외적 조건을 마련할 힘에 부쳐 결혼을 미루다가 30대 후반 40대 초반으로 접어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널리고 널린 세상.
 눈 감으면 흰 브라우스에 검정 비로드 통치마를 입고 아리따운 모습으로 창가에 앉아 풍금을 치곤하시던 정도성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시골 아이들의 장학을 위해 살점 같은 피 같은 자신의 봉급에서 떼어내 육성해낸 수많은 제자들의 추억담, 회억담으로 동창회 때마다 눈물바다를 이뤄 손수건을 꺼내들게 하곤 하던 그 애휼.
 하지만 오늘날 교단에는 따돌림과 편가르기가 다반사고 햇병아리 초임교사를 괴롭히는 교직자까지 있다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비 오는 날이면 창가에 서서 제자의 가슴 아픈 실반지 사연을 그려냈을 시인의 마음을 이따금 생각하련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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