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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나는 사춘기 절정에 있는 중3 쌍둥이 엄마다. 할 짓 안 할 짓 다 하고, 속 썩일 짓 다 하고, 툭툭 욕 몇마디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요즘 눈에 띄게 변한 것이 제 방문 닫기이다. 봄부터 딸깍딸깍 문 닫는 소리를 내더니, 올 여름 혹서 속에서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수가 틀린 날에는 아예 안에서 잠긴다.

 내가 터득한 사춘기 대처법은 모른 척하기이다. 부싯돌처럼 부딪혔다가 불꽃이 몇 번 튀고 난 뒤부터 나는 아이들을 그냥 둔다. 아니 웬만하면 그냥 두기로 한다. 아들은 사춘기 남자 아이들이 그렇듯 조금씩 성에 눈을 떠가는 것이 느껴지고, 딸은 공연한 일에도 샐쭉거리고 더 자주 문을 잠근다.

 문제는 그 닫힌 방 안에서 딸이 죽자사자 화장을 한다는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도 화장을 해서 두어 번 교문 앞에서 선생님께 걸린 적이 있었다. 학교 담임 선생님께 화장하는 아이들을 단속해 달라는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담임 선생님도 화장 안 하는 아이들이 없다며 심하지만 않으면 그냥 눈감아 주라는 분위기였다. 그 때마다 딸을 적당히 말리고 마음을 놓았는데 딸의 화장은 도가 넘었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화장품을 사 들이더니 장난감 같은 화장대 서랍이 화장품으로 가득 찼다. 딸은 방학이 되자 작정을 하고 화장한 얼굴로 학원을 오가기 시작했다. 화장 좀 하구나. 그래. 그러고 싶을 때가 되었지. 모른 척 눈감아 주기로 했다. 요즘 화장 안 하는 아이들 있나.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화장을 한다고 하는데. 봐주자. 나도 그런 것쯤 이해할 줄 아는 젊은 엄마라고 스스로 달래며 눈감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화장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화장에 목숨을 거는 수준이 돼버렸다. 한 번은 외출을 하려고 한참을 기다렸더니 딸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나와 오늘은 화장이 안 먹어 외출을 못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날 이후 우리 집에 화장 전쟁이 시작되었다.

 '너희 때는 화장 안 해도 예뻐' '싸구려 화장품 잘 못 바르면 피부 뒤집어 져' 이런 말은 무용지물. 서랍 속 화장품을 모조리 쓸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적도 있고, 용돈을 막아도 봤지만 이 역시 소용없는 일이었다. 딸의 화장은 막을 도리가 없다. 청소년용을 겨냥한 화장품 브랜드만 해도 열손가락으로 부족하고, 고개만 돌리면 어제 티비에 나온 가수가 입은 옷이 옷가게에 걸리니 아이들의 호기심을 막기란 쉽지 않다.

 화장하는 것에 대해 발끈하는 엄마에게 딸은 딸 대로 또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요즘 화장 안 하는 애 없어. 없긴 왜 없어,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한심하게 그러고 다니지. 공부 못하긴,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애들도 다 그러고 다녀. 딸과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공부할 거 다하고 화장하는 데 뭐가 잘못됐냐는 거다.

 사실 딸도 공부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시험 기간이 오기 전부터 독서실과 도서실 단골이 된다. 밤을 새기도 하고 망친 시험지를 안고 울기도 한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입술을 내밀고 먼저 뽀뽀를 하기도 한다. 하는 짓은 순진하고 어린 중3짜리 여학생인데 어떻게 해서 저토록 화장에 집착하는 것일까?

 문제는 티비다. 연예인을 흉내 내는 것이다. 나다운 나는 없고 연예인을 모방하는 잘못된 나가 자아를 잠식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자신을 화려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차려 입고 화장을 하고 다녀야 내 자신이 당당하고 기죽지 않다니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안타깝다. 지금 하는 고민이 그만큼 자신을 성장시켜 준다는 사실보다 당장 내 입술에 바르는 빨간 립밤에 온 정신을 빼앗기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 시절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오직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 따라잡기에 혈안이 되어 참 자아를 망각한 채 지내고 있으니 답답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실 청소년 시절에 해야 할 것은 공부만은 아이다. 미래를 고민하고 나를 고민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더 큰 눈을 키워야 할 때, 공부를 잘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되고 허용된다는 생각은 안타까울 뿐이다. 화장을 하고 결함을 감추고 곱게 보이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겉모습이 번지르르해야만 대접받는 이 시대도 문제다.

 나는 내 딸이 화장기 하나도 없는 얼굴로 등교하는 중3이 돼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만한 나이에 바라봐야 할 것. 그 나이가 지나면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가, 넌 이뻐. 지금 이 순간이 너는 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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