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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고 교육행정 주사보

45개월 된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필자는 소위 말하는 '육아독립군'이다.
 주변에 아이의 양육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양가가족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진학과 취업으로 고향 울산을 떠났고, 타지에서 생활하며 이 곳에서 남편도 만났다. 양가 가족들이 다 경상도에 둥지를 틀고 있어 아이를 맡길 곳은 어린이집 등의 기관이나 사비를 들여 고용한 시터 외에는 아무 곳도 없다. 게다가 평일에는 얼굴보기가 힘들만큼 바쁜 남편 덕에 '독박육아'라는 훈장까지 덤으로 달았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얼마나 험난한 육아 레이스가 펼쳐질 지 상상도 못했다.


 육아독립군인 우리 부부에게 육아란 그야말로 신선하지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갓난아기가 본능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못 자고 못 먹고 이런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복직을 하고 본격적인 양육의 세계로 뛰어들수록 높은 현실의 벽에 수없이 부딪혀야 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급히 야근을 해야 하는데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상당수의 맞벌이 가정이 이렇게 아이를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이를 낳기 전엔 '황혼육아'라는 것이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육아를 해보니, 부끄럽게도 맞벌이 가정에서는 그게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할마' '할빠'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황혼육아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사회적인 구조를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워킹맘은 늘 생각이 많다. 생각의 많은 부분은 불안감과 죄책감이다. 이 전쟁통 같은 상황 속 에서 '내가 과연 잘하고 있나?'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다. 대부분은 불만족스럽기 마련이다. 왜냐면 직장과 가정생활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 맞벌이 가정이고, 분명 돈을 흥청망청 쓰며 가계를 꾸리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돈은 계획대로 모이지가 않는다. '육아독립군'의 형태는 고비용으로 유지되는 구조다. 날로 커지고 있는 시터시장을 보면 내가 고용 창출에는 한몫하고 있는 것이 맞는데, 개인이 이러한 형태를 쉽게 바꿀 방도는 없다. 그런 연유로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양가가족의 집근처로 이사를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육아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할지라도 "아이 때문에…"로 시작되는 말은 여전히 입 밖으로 내기가 껄끄럽다.
 회식 때면 시터와 남편의 스케줄을 다 맞춰야 하다 보니 참여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아이 기관의 월중 행사표에 '부모참여행사'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직장스케줄을 떠올리느라 두뇌는 신속히 풀가동된다.
 실제로는 워킹맘들이 이러한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각종 워킹맘 관련 육아서만 들춰봐도 죄책감을 갖지 마라는 말이 늘 등장한다. 그럴싸한 공연을 보여줘야 아이의 예술 감각이 늘어날 것 같지만, 사실 아이는 밀가루 반죽만 쥐어줘도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다. 아이가 부족해도 무조건 엄마의 탓도 아니거니와, 아이가 뭔가 큰일을 해내도 무조건 엄마의 노력 때문만도 아니다.
 지금은 아기냄새를 풍기며 쫑알대는 이 아이가 몇 년 만 지나도 지금만큼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의 험난한 육아레이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으로는 난이도가 높아지겠지만 육체적으로는 좀 편해질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우리나라의 육아관련 정책도 지금보다는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라는 끊임없는 반문과 자아비판은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 이미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서 환히 웃는 아이를 끌어안으면 '그래 이 맛에 내가 살지'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이 사소한 감정이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일으켜주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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