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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울산중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술 등을 끊고 지내는 회원들의 회복수기에 대한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다. 수기란 자신의 체험을 자기 손으로 직접 쓴 것이므로 의학에서의 사례를 들을 때와는 달리 그 '현장'에 직접 가보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필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보통은 진료실에서 사례 중심으로 환자를 보는 데 수기를 읽으면서 그 수기를 쓴 사람 중심으로 관점이 옮겨가는 것을 경험한 듯하다. 한 분 한 분 각자의 사연이 그 사람 육성으로 나왔으며 그런 각자가 드러나는 것이어서 사실 시상식에서 누구의 수기가 더 나은가 그런 것은 의미가 없이 느껴졌다.
 글에는 과거 자신의 상처가 나와 있고 그리고 또한 자신의 잘못도 솔직히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솔직히 과거를 드러냈기 때문에 또한 과거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알코올 중독환자들을 치료하는 경험에서 보면 단주는 쉽지 않다. 기준에 따라서 다르지만 엄격하게 본다면 아마도 열 명에서 두 명쯤 성공한다고 볼까. 이렇게 단주가 어려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독은 뇌를 통한 의학적 질환이기 때문에 사실 단지 의지로 술을 끊는다는 것은 어느 측면에서 마치 당뇨나 혈압을 의지로 극복하려는 것처럼 모순적인 것이다. 물론 술을 마시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모두 뇌를 통한 생물학적 요인이 전부라는 것은 아니다. 심리·사회적 요인 등 다양하다. 이런 것이 서로 연결돼 정말 끈질기게 술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수기에서는 자신이 또는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술에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 없게 됐나 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는데, 많은 경우 그들은 과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의 상처라는 것은 원래 이미 우리가 그 세계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처해진 상황은 불안과 같은 기분이 그 바탕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돌보아야 하는 과거는 우리가 벌거벗겨져 던져진 곳이고, 일상을 살면서 잊고 있다가 그런 자신의 상처가 드러날 때 우리가 취약해지면서 그것을 잊기 위해 다시 술에 기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느 연로한 남자 환자분은 유복자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고 앞에서 장사를 해야 했고, 그래서 부끄러워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음주가 시작되었고 그리고 어머니도 술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사실 술은 약리학적으로 보면 중추신경 억제제로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안정제이다.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부끄러움'이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술로 가라앉히면서 대신 열심히 일하며 그 성실함으로 잘 회사생활을 하신 분이다. 그러다가 그 회사생활에서 경쟁이 너무 심하고 혼자 지내는 가운데 우울증이 생기고 밤마다 술을 마시는 생활로 빠져들었다. 과거의 상처가 반복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마시던 음주 행동방식이 50세에 불거지면서 다시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회사 다니면서 즐겼던 음주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 종일 계속 마시게 됐고 급기야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병원 입원도 여러 번 하고, 우여곡절 끝에 알코올 중독이 병이고 자신이 술에 무력하다는 것을 인식한 후 처방된 약을 들고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면서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럼에도 술은 간간히 마시고 우울증은 남아있어 자살사고, 의욕저하 등의 증상은 계속 겪고 있었다.

 이러던 중 상담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갖게 하는 한마디 깨달음의 말을 듣게 된다. 센터의 상담자가 던진 말인데 "인생의 끝이 그려지느냐"라는 질문이었다. 그 때 환자분은 정신이 번쩍 들어 이후로 센터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회복에만 전념하게 되어 중독 이전보다 더 바쁘고 값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야기에 쓰고 있었다.
 과거 상처라는 것은 사실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지금껏 포로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에서 다시 체험돼야 한다. 다시 체험되어야 하는 과거는 미래로부터 와야 하는 것이고 그러면 과거로부터 현재로 리바운드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 환자를 그렇게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 상담자의 말에는 그런 그의 전 인생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수기로 적으려고 했을 것이다. 자신이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진심을 적으려 하는 것이고 마음의 병의 치유는 이런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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